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는 대중의 기대를 배반해야 성공한다. 골목길을 돌았을 때 예상치 못한 길이 나와야 몰입도가 높아진다. 스릴러는 더욱 그렇다. 장항준 감독은‘기억의 밤’ 시나리오를 쓰다가 드라마 ‘싸인’을 만들 때 인연을 맺은 국과수를 찾아갔다.
“‘이런 기억상실이 말이 되나요?’라고 물었더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저 혼자 상상했던건데, 막상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기억의 밤’은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 진석(강하늘)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그리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이다.
‘가출했던 형이 돌아왔는데, 기억을 잃어버렸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이걸 어떻게 풀까 하다가 어느날 문득 나이트 M.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가속도가 붙었다. 정신분석 전문의와도 수 차례 대화를 나누며 검토를 마쳤다. 다행히 영화를 좋아하는 전문의라 말이 잘 통했다. 1년간 공을 들여 각본을 완성했다.
‘기억의 밤’ 초반부는 흡사 ‘하우스 호러’를 연상시킨다. 2층집에 새로 이사온 진석 가족에게 미스터리한 일이 하나 둘씩 벌어진다. 형 유석과 엄마(나영희), 아빠(문성근)는 동생에게 2층 방문을 절대 열지 말라고 일러둔다. 궁금증에 사로잡힌 진석이 손잡이를 잡아돌리는 순간, 긴장의 강도가 높아진다.
“2층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장면을 호러로 찍으려고 했던건 아니예요. 기자시사회에서 많은 분들이 놀라더라고요. 제가 외국 전래동화 ‘푸른수염의 사나이’를 좋아하거든요. 미스터리한 성주와 결혼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죠. 매력적 장치를 원했던 것 뿐입니다.”
그는 대학시절 극작법 수업만 줄기차게 들었다. 당시 그가 읽은 극본, 시나리오만 2,000편이 넘는다.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의 시나리오로 충무로에 입성해 2002년 ‘라이터를 켜라’, 2003년 ‘불어라 봄바람’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드라마 ‘싸인’은 터닝포인트였다. 스릴러의 매력에 빠졌다. 댓글을 읽으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기억의 밤’은 작심하고 만든 장르영화다. 스릴러 장르를 통해 과거 역사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시나리오 쓰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요. 피가 마르죠. 초고를 쓴 뒤에 끊임없이 수정해야하니까요. 반면, 연출은 재미있어요. 무생물의 텍스트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과정이잖아요.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요. 작가나 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많이 읽고 많이 보라는 거예요. 살면서 얻은 깨달음은 하나예요. 왕도는 없다는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가는게 중요합니다.”
[사진 제공 = 메가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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