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영화 '짝패'에는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게 강한 것이더라!?"라는 명대사가 있다.
프로농구 출범 후, 짧았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씁쓸하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누군가는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면에 이름을 올려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그래서 울산 현대모비스 주장 양동근(36, 180cm)의 커리어가 더 빛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하게 데뷔한 양동근은 이후 성실함을 무기삼아 13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을 때를 제외하면, 그는 늘 '최고의 가드' 반열에 이름을 올린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양동근은 득점, 어시스트 등 누적기록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잘해서가 아니라 오래 뛰었기 때문이죠. 저는 잘했던 형들에 비하면 임팩트가 떨어져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그에게 영화 속 명대사를 새삼 알려주고 싶다.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게 강한 것이더라!?"
▲8.부상, 그리고 8시즌 연속 베스트5 실패
양동근은 KBL에서 가장 오랫동안 베스트5 자리를 지켜온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양동근은 군 제대 직후인 2009-2010시즌을 시작으로 2015-2016시즌에 이르기까지 7시즌 연속으로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군 입대 전 2차례까지 포함하면 총 9차례 베스트5에 선정됐다.
하지만 8시즌 연속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양동근은 2016-2017시즌 첫 경기에서 손목을 다쳐 수술대에 올랐고, 이 탓에 29경기 출전에 그쳤다. 건강한 상태로 시즌을 치르는 것만으로 베스트5 선정을 장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기량을 보여줄 여건조차 조성되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지 않았을까.
"부상 때문에 8시즌 연속 베스트5에 선정되지 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농구를 못했을 뿐이죠. 부상도 결국 제 운명이라 생각해요. 물론 아쉬운 시즌이었지만, 얻은 것도 있었어요. 심적으로 농구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밖에서 농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게 있었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됐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됐어요."
▲9.현대모비스, 역대 최다 챔프전 9회 진출
현대모비스는 전신 기아 시절부터 명성을 단단하게 쌓았던 팀이다. '허동택 트리오'를 앞세워 농구대잔치 7회 우승을 달성했고, 프로농구 출범 원년인 1997시즌에는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1998-1999시즌까지 3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 대전 현대(현 KCC)와 라이벌 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간판을 모비스로 바꾼 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지만, 이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였다. 양동근의 입단, 유재학 감독의 부임을 통해 새 팀으로 거듭난 현대모비스는 이후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명가 재건에 성공했다. 현대모비스는 통산 9차례 챔프전에 진출했고, 이는 KBL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 가운데 양동근이 입단한 이후 6차례 챔프전 무대를 밟았다.
"기아하면 '왕조' 아닌가요? 너무 어릴 때라 선수들의 기량을 세세하게 체크하며 농구를 봤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왕조'로 불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죠. 저희 팀이 저 때문에 챔프전에 많이 오른 것은 아니죠. 저희 팀에 있었던 좋은 선수들 덕분입니다. 첫 챔프전(2005-2006시즌, 삼성)에서 스윕을 당했지만, 지나고 보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땐 삼성과 전력 차가 컸고, 저희 팀이 정규리그 우승할 거란 예상도 없었잖아요. 삼성에 4패로 밀렸지만, 챔프전 경기내용은 나쁘지 않았어요. 연장전까지 갈 뻔한 경기도 있었고…. 저희 팀으로선 정말 큰 경험을 쌓았던 거죠. 결과적으로 다음 시즌에는 부산 KTF와의 챔프전에서 7차전까지 간 끝에 우승을 차지했잖아요."
▲10.올스타 10회 선발 "죄송합니다"
양동근은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는 한편, 리더십도 발휘한 덕분에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올스타전에만 총 10차례 출전했고, 이는 전체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추승균(전 KCC), 주희정(전 삼성), 김주성(DB)이 13회로 이 부문 공동 1위이며, 그 뒤로는 이상민(전 삼성·12회)과 서장훈(전 kt·11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양동근은 2010-2011시즌에 생애 처음으로 팬 투표서 최다득표를 차지했다. 이상민 이외의 선수가 최다득표자로 이름을 올린 건 양동근이 최초의 사례였다. 2011-2012시즌에는 2001-2002시즌 팬 투표가 도입된 이후 유일무이한 70% 이상의 득표율(73.3%)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스타전 얘기만 나오면 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에요. 화려한 기술을 보여줘야 하는 이벤트전인데, 제가 보여줄 게 없잖아요. 그래서 올스타전 때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어요. 저도 제가 많은 표를 받은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뽑을 사람이 없었나 싶기도 하고…(웃음). 열심히 하는 모습을 팬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사실 전 올스타전보다 정규경기를 하는 게 오히려 편해요. 올스타전에서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물론 한중 올스타전에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농구를 보여줄 수 있어요. 악착같은 모습이요. 하지만 단순한 올스타전은 재밌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저는 그게 안 돼요. 토크콘서트를 할 수도 없고…. 물론 프로는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올스타전 최다 출전 기록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요?)욕심 없습니다(웃음)."
▲11.통산 득점 11위…10위 진입도 눈앞
양동근은 득점루트가 다양한 가드다. 2대2, 3점슛, 중거리슛뿐만 아니라 매치업 상대에 따라 포스트업도 구사한다. 데뷔 후 12시즌을 치르는 동안 평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건 손목부상으로 오랫동안 결장한 2016-2017시즌이 유일하다.
꾸준히 득점을 쌓은 덕분에 양동근은 통산 득점 10위 진입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까지 6,800득점으로 11위에 올라있으며, 올 시즌 기록(평균 12.3득점)을 유지한다면 시즌 중후반쯤 10위 조니 맥도웰(전 모비스·7,077득점)을 제칠 것으로 보인다.
"(유재학 감독이 '농구는 심플하게 하는 것이 최고'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거 아닐까요? 다들 아는 공식 있잖아요. 치고 들어가는데 누가 붙으면 패스하고, 수비 없으면 슛 던지고…. 2대2도 간결하게 전개하고요. 물론 말처럼 쉬운 게 아니죠. 공격이라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요."
▲12.12일 학생체육관에서 있었던 일
지난 1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현대모비스는 서울 SK를 상대로 치른 원정경기에서 2차 연장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함지훈-이종현이 연달아 5반칙 퇴장당한 이후 투입된 김동량의 '깜짝 활약'도 큰 힘이 됐지만, 사실상 이날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간 일등공신은 양동근이었다. 4쿼터까지 5개의 3점슛을 터뜨리며 SK를 괴롭힌 것.
하지만 양동근도 사람이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44분 44초를 소화한 양동근은 현대모비스가 104-105로 뒤처진 2차 연장전 종료 5초전 미끄러지며 공을 놓쳤고, 이후 고개를 숙였다.
양동근의 실책 이후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유재학 감독은 "아무리 (양)동근이라고 해도 나올 수 있는 실책이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돌아봤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코트 바닥에 땀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최부경이 수비를 잘했기 때문이죠"라는 문경은 SK 감독의 말이 맞는 걸까.
"체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재밌는 경기였어요. 마지막 상황에서는 미끄러졌는데, '끝났다' 싶더라고요. 미끄러진 것이든, 상대(최부경)가 수비를 잘한 것이든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팀이 졌는데…. 그날 제가 2차 연장전에서만 실책을 3개 범했어요. 마지막 실책 이전에도 아쉬웠던 상황이 많았다는 거죠."
▲13.13년을 돌아보며
김승현처럼 화려한 패스를 한 것도, 주희정처럼 트리플 더블을 작성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양동근은 '성실함'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앞세워 어느 포인트가드 못지않게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13년을 보냈다.
양동근도 어느덧 30대 후반의 베테랑이 됐다. 아직 은퇴시기를 못 박은 건 아니지만, 뛰어온 날들에 비하면 '선수 양동근'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양동근은 여전히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다. 올 시즌에도 외국선수들을 통틀어 평균 출전시간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3년 동안 한결 같은 모습으로 선수생활에 임한 양동근은 앞으로도 변치 않는 자세로 커리어를 채워나갈 것이다. 그가 이를 토대로 등 떠밀려 은퇴한 선수들과 달리 '박수칠 때 떠나는 선수'로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길 응원한다. 야구의 이승엽(전 삼성)처럼 말이다.
"13년. 돌아보니 정말 빨리 지나갔네요. 돌이켜 보면 2006-2007시즌 챔프전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프로 데뷔 후 처음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거라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거든요. (아쉬웠던 시즌이 있다면?)저는 팀이 우승을 못했다고 해도 그 기억을 아쉬워하진 않아요. 다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꼽자면 지난 시즌은 아쉬웠죠. 다쳤잖아요. 평소에도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다치니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됐죠. 그런데 다치고, 안 다치고는 몸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사고죠, 사고. (김)선형이나 (양)희종이도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니잖아요. 다치는 걸 걱정해서 농구를 소극적으로 할 수도 없고…. 결국 이 부분은 운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혹시 은퇴시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있나요?)당장 내일이라도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두려고요. 제 몸이 안 된다면 언제든 (은퇴할)준비가 되어있어요. 실력도 없는데 그동안 쌓은 명성만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죠. 다만, 언제 그만둔다고 해도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어제도, 오늘도 열심히 농구를 해야 한다는 각오도 늘 갖고 있어요. 뭔가 남겨놓으면 찝찝하잖아요."
[양동근. 사진 = 마이데일리DB, KBL 제공, 현대모비스 농구단 제공]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