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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우리은행이 비상금으로 이란 기업 ‘엔텍합’에 600억원의 계약보증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600억원은 최근 직원의 횡령으로 사라진 614억원 중 일부다. 은행측은 구속된 A씨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4일 이데일리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달말 이란 다야니 가문이 소유한 가전업체 엔텍합에 계약보증금 약 600억원 지급을 완료했다.
우리은행 직원 A씨가 횡령한 자금은 옛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려던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몰수한 계약금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2010∼2011년 당시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주관했지만 계약불발로 이를 관리해왔다.
다야니 가문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채권단에게 계약금을 지급했지만 계약불발로 채권단이 계약금을 몰수했다. 이후 다야니 가문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승소해 약 730억원을 돌려받게 됐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송금이 이뤄지지 못하다가 올해 초 미국의 특별허가로 송금이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횡령사실이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계약보증금이 이미 본 계좌에서 사라진 만큼 가지급금 계정에 있는 자금을 활용해 이란 측에 지급했다. 가지급금 계정이란 이번 횡령사고처럼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모아둔 일종의 비상금 계좌다.
우리은행은 직원 A씨에게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해 자금을 회수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A씨가 횡령금을 파생상품 투자 및 동생 사업자금으로 전부 날렸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복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우리은행이 기대하는 최상 시나리오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A씨가 은닉한 자금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다. 경찰이 은닉 자금을 찾아내면 보전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때 우리은행이 보전 자금에 대해 구상권청구소송을 하고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이를 받아오는 방식이다.
A씨 명의의 재산을 가압류한 뒤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일 우리은행의 A씨 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같은 방식으로 횡령금 614억원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서는 A씨가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족 명의로 자금을 빼돌렸을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고 분석했다. 가족명의로 빼돌린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과정이 쉽지 않아서다.
예를 들어 A씨의 가족이 해외에서 횡령금을 활용해 가족 명의로 부동산을 구매했다면 실제 횡령금이 가족에게 넘어간 것이 맞는지, 그 자금으로 부동산을 구매한 것이 사실인지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있다. 가족이 구매한 부동산 계약을 취소하도록 해야 하지마나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예를 들어 부인이 A씨에 받은 횡령자금 5억원을 활용해 부동산을 샀다면 5억원을 보낸 행위로 인해 부인이 공범으로 가담한 것이 되는지 등 여부를 가려 계약이 취소될 수 있는 법리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일일이 가족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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