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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지난 17일 오후 2시 대전고법 법정, 21살의 여성은 양형 이유를 읽는 재판장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산후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자신의 젖먹이 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년째 수감 생활을 해왔다.
재판 내내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여성의 아버지도 재판장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자 딸을 따라 울음을 터뜨렸다.
18일 이 사건 판결문을 인용한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3월 말 거주지에서 생후 1개월 된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통수를 한 차례 때리고 머리가 앞뒤로 흔들릴 정도로 심하게 흔들다 침대 매트리스 위로 떨어뜨렸다.
머리를 다친 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며칠 뒤 숨졌다. 1심 재판부는 “몸이 힘들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모두 세 차례 이어진 이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재판부도, 변호인도 A씨가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한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징역 5년 이상 법정형은 집행유예 대상이 아님에도 A씨 감형을 위해 ‘작량감경(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 재량으로 형을 감경하는 것)’으로 형량을 2년 6개월로 줄인 뒤 집행유예를 선고해 그를 석방시켰다. 법조계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 판결이라는 말이 나왔다.
재판부가 파격적 판결을 내린 배경엔 A씨의 성장 배경 등 범행에 이르는 과정이 놓여 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급격히 기운 A씨는 고2 때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택배작업, 식당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돕다가 현 배우자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2020년 6월 A씨는 아이를 임신했는데 당시 나이는 19살이었다. 주변에서는 출산을 만류했지만 A씨는 임신 사실에 감사하며 아이를 출산했다.
열악한 가정형편 등으로 인해 A씨는 산후조리원은 물론이고 양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A씨 남편은 생계유지를 위해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했는데 작업은 매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 일을 주 6일 반복했다.
A씨 법률대리인 김은진 변호사 등에 따르면 육아는 A씨 전담이었다. 10㎡(3평) 남짓한 원룸에서 A씨는 온종일 아이를 돌봤다. 코로나19 유행 탓에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아이는 계속해서 울었지만 어린 엄마는 아이를 달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웃 민원이 이어지면서 A씨의 산후우울증도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고 한다.
재판부는 “A씨가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빠졌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혼자 아이를 돌보던 중 이성을 잃은 나머지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산후우울증이 어떤 질환이고 여성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변호인에게 관련 논문도 제출하라고 했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인용해 이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묻기도 했다. 재판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A씨처럼 혼인했으나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는 데는 매우 소홀하다”고 밝혔다. 산모 건강관리 지원이나 가사 도우미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미혼모 중심으로 이뤄지거나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A씨 부부 사례 같은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제도 미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등에 사실조회도 신청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제도를 이용하려 해도 피고인은 70만원이라는, 경제적 형편에 비춰 매우 큰 액수의 자기부담금을 내야했다”며 “피고인이 홀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태서 저질러진 범행의 결과를 놓고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재오 부장판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전형적 아동학대치사 사건이 아니라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에 따른 고통의 문제를 사회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양심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례적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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