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존재는 부재를 통해 선명함을 드러낸다. 윤시내는 70~80년대 한국 가요계의 대표적 디바였다.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 고음에서 절정을 이루는 감정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보컬로 불렸다. 만약 그가 공연을 앞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김진화 감독은 유명 가수가 갑자기 없어진다는 아이디어와 그를 좋아하는 짝퉁 가수가 관종 유튜버 딸과 함께 찾으러 떠난다는 로드무비를 결합시켜 기발하고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윤시내가 사라졌다’를 내놓았다. 윤시내의 히트곡을 흥얼거리며 두 모녀를 따라가다보면 ‘나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철학적 메시지도 담아냈다.
전설적인 가수의 실종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20년 간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해온 순이(오민애)는 윤시내와 함께할 뻔한 꿈의 무대도, 일자리도 잃어 좌절에 빠진다. 사람들의 관심이 고픈 유튜버 ‘짱하’(이주영)는 라이브 방송 중 우연히 찍힌 엄마 연시내 영상의 조회수가 떡상하자 대박 콘텐츠를 꿈꾸며 윤시내를 찾는 여정에 따라 나선다. 동료 가수 운시내(노재원)와 함께 가시내(김재화), 윤신애, 윤사내까지 모두 만나며 사라진 윤시내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지만, 이미테이션 학원에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수원을 거쳐 대전을 지나 진주에 이르는 ‘윤시내 찾기’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두 모녀의 로드무비는 맨 마지막 실제 윤시내를 만나기까지 모두 ‘짝퉁’을 만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연시내에 호감을 갖는 운시내부터 수원 이미테이션 학원의 수많은 짝퉁 가수들, 대전의 가시내와 진주의 윤신애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그들의 삶을 통해 과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누군가를 열심히 흠모하며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도 뛰어난 능력이 아닌가. 그들은 모두 진심을 다해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짱하도 마찬가지다. 관종이라는 비판에 그는 “관종이 뭐 어때서?”라고 대꾸한다. 남의 노래를 흉내내는 가짜도, 남의 시선에 목마른 짝퉁도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진심이다.
김진화 감독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를 읽고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고 밝혔다. 서양에서 개인(individual)은 ‘나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이 작가는 인간은 나뉠 수 있는(dividual) ‘분인’이라고 설명한다. 가정, 직장, 친구, 동호회 등에서 나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 분인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 ‘진정한 나’ 따위는 없다. 그냥 우리에게 여러 개의 나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낫다. 짝퉁이든, 관종이든 그것 또한 나를 이루는 분인 중 하나다. 어느 한가지 잣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 아둔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분인이 서로 다투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DJ에게’로 문을 열고,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로 닫는다. “그 음악을 제발 틀지 마세요”라는 가사는, 짱하 입장에서 엄마가 윤시내 노래를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는 제목 그대로, 순이 입장에서 ‘윤시내 바라기’의 삶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딸은 여전히 엄마를 구박한다. “윤시내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다”고 투덜댄다. 과연 순이는 짝퉁 이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을까. 순이는 딸에게 “내가 할줄 아는게 없다고?”라고 대꾸한다. 이 짧은 여행의 끝에서 순이는 이미테이션 가수에서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새로운 ‘분인’과 함께 또 다른 길을 떠날 것이다.
[사진 = 블루라벨 픽쳐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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