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잠실 윤욱재 기자] LG와 롯데가 격돌했던 지난 2일 부산 사직구장. 2-2로 맞선 연장 10회말이었다. LG는 마무리투수 고우석이 나왔지만 무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LG 벤치에서는 경헌호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해 고우석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미 투수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마운드 방문이 2차례가 있었기 때문에 KBO 스피드업 규정에 따라 이번에는 무조건 투수교체를 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LG는 부랴부랴 새로운 투수를 준비해야 했고 LG의 선택은 '베테랑' 김진성이었다. 김진성은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역시 갑자기 마운드에 올라온 여파는 커보였다. DJ 피터스에게 초구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내면서 무사 만루 위기에 놓인 것이다.
"투구하기 전 루틴이 있는데 루틴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심판께서 연습투구를 많이 던지게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니까 조금만 던지라고 하시더라. 한 6개 정도 던지고 투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진성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두성을 삼진 아웃, 배성근을 포수 파울 플라이 아웃, 이학주를 1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으며 무사 만루 끝내기 위기를 잠재웠다.
"베테랑이니까 막아야죠. 그것을 막으라고 베테랑을 영입하는 것"이라는 김진성은 "그냥 삼진 3개를 잡자는 생각으로 던졌다. 자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보다 끝내기 패배 위기에서도 주무기인 포크볼을 과감하게 구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공 하나만 뒤로 빠져도 곧 패배로 직결될 수 있었는데 그만큼 배터리의 신뢰가 두터웠기에 가능했다. 김진성은 "(유)강남이가 정말 리드를 잘 해줬다. 나보다 한참 후배인데도 내 부담을 덜어주려는 모습이었다. 유독 그날 파이팅을 더 많이 해줬다. 강남이한테 정말 고마웠다. 강남이가 리드한대로 던졌다"라고 유강남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하마터면 김진성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마운드를 떠날 뻔했다. NC로부터 갑작스럽게 방출 통보를 받으면서 갈 길을 잃었던 것이다. 그래도 김진성은 좌절하지 않고 9개 구단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펼쳤다. 차명석 LG 단장과 연락이 닿은 김진성은 "입단 테스트도 좋습니다"라고 말했고 차명석 단장은 "네가 김진성인데 무슨 입단 테스트냐"라며 김진성을 품에 안았다.
LG의 김진성 영입은 분명한 성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28경기에 등판해 1승 3패 4홀드 평균자책점 3.86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진성은 특히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멀티이닝도 불사하면서 LG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김진성이 LG에 와서 놀랐던 것이 있다. 보통 투수는 투구할 때 버릇을 노출하는데 이를 LG 선수들이 잡아준 것이다.(야구계에서는 아직 일본어인 '쿠세'라는 말이 익숙하게 쓰인다.) 김현수, 오지환, 채은성 등 LG 야수들은 김진성의 투구 버릇을 짚어줬다. 김진성은 "NC에 있을 때는 못 잡았는데 LG에서 타자들이 알려줘서 알게 됐다. 사실 내가 LG전에 약했다"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오지환은 "형 덕분에 연봉이 많이 올랐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투구 버릇만 잡아주는 것이 아니다. "LG는 모든 야수들이 다 잘 도와준다"는 김진성은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5월에 성적이 좋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지환이와 (채)은성이가 '형의 포크볼은 알고 있어도 들어오면 치기 힘들다'고 하더라.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전했다.
또한 선수들을 향한 코칭스태프의 '존중'도 김진성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진성은 "LG에서 행복하게 야구하고 있다. 코치님들이 선수들을 굉장히 존중해서 놀랐다"라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 나중에 코치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만약 코치가 된다면 선수를 먼저 존중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자신이 느낀 바를 이야기했다.
다시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절박한 목표 하나를 이룬 김진성은 이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LG 팬들한테 '김진성이라는 선수를 영입하기를 잘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김진성은 "10점차나 20점차에 등판해도 상관 없다. 뛰고 있는 자체가 감사하다. 요즘은 팔만 풀어도 기분이 좋다. 사람이 밑바닥까지 가니까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인터뷰 도중 지나가던 차명석 단장은 취재진에게 "얼마나 잘 하고 있습니까. 내년에 장기계약을 해야 하나"라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김진성은 "저는 지금 하루살이입니다"라면서 앞으로도 절박한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를 것임을 다짐했다.
[김진성. 사진 = 마이데일리 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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