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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화면에서 보던 것과는 인상이 조금은 달랐다. '최종병기 앨리스'에선 메마른 느낌이었는데,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송건희는 훨씬 역동적이었다. 표정이, 감정이, 말투가.
"작년에 열심히 촬영했는데 결과물을 직접 보니까 저도 너무 기분 좋아요. 보신 분들도 재미있다고 하시니까 더 기분 좋더라고요!"
들뜬 감정을 늘어놓다가도 자신이 연기한 가련한 소년의 이야기를 할 때는 여름의 새벽녘처럼 서늘했다. "여름이가 어떤 생각을 할지 고민 많았다"고 했다. "고통이란 것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도 했다.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와 죄책감,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으로 잊으려는 습성까지 '최종병기 앨리스' 속 여름은 밝고 뜨겁기보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활활 타오르며 바짝 메마른 채 무너져 내려가는 계절이었다.
"애매모호함이 여름이의 감정 아닐까 싶었어요. 죽음과 삶 사이에 놓인 감정. 그 애매모호함이 여름의 포인트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른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어둡지도 않은 그런 모습이요. 겨울(박세완)이에 대한 마음은 처음엔 이해가 안됐어요. '너 때문에 처음으로 살고 싶어졌어'란 마음을 고민 많이 했거든요. 근데 다 비우고 촬영에 들어가는 순간 확 와닿더라고요. 무릎 반사처럼요. 그게 여름이만의 유일한 고백 방식 아닌가 싶었어요. 여름이는 살아가고 싶던 아이가 아니니까 누군가로 인해 살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 자체가 어쩌면 여름이에게 가장 커다란 충격이지 않았을까요. '너 때문에 처음으로 살고 싶어졌어'란 대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예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송건희의 표정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설??鳴 두려웠다가 격렬하게 즐거웠다가도 순식간에 조심스러워졌다. 프로필에서 나이를 힐끗 확인해 보니 1997년생이었다. 또래 배우들보다 송건희가 품은 감정의 우물은 깊게 느껴졌다. "저는 사실 연기를 하면서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어요." 씨익 웃는 송건희의 미소에 여름이 보였다.
"'스카이캐슬' 영재를 맡았을 때, 강박이 있었어요. 연기적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방에서 나가지도 않고 저 스스로 고통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어요. 근데 그 고통이 영재한테 담겼던 것 같아요. 덕분에 '스카이캐슬'은 저한테 진짜 감사한 작품이 됐어요. '스카이캐슬'이 있어서 지금의 여름이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름의 고통은 송건희를 바꾸어 놓았다. 여름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송건희는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봤던 것이다. "여름이가 부러웠다"고 했다.
"굉장히 당차고 겁도 없고, 쫄지도 않는 그런 모습의 여름이가 부러웠어요. 여름이를 연기하며 저도 조금은 더 대범해진 것 같아요. 여름이가 왜 이렇게 살고 싶었나 생각하며 저도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거든요. 전 사실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연기 현장이나 사람관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거든요. 나름 깨부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닳고 닳아서 제 안에 숨어있던 것이지, '누군가 툭 치면 확 튀어나올 수 있구나' 하고 제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던 시기였어요. 그러면서 저도 여름이를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수도 없이 보고 눈물 흘렸다는 송건희다. 내성적이던 소년 송건희가 배우의 꿈을 품은 건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출전한 연극대회 때문이었다. 자신의 어설픈 연기에도 관객들이 웃고 웃는 것을 보며 송건희 내면의 트라우마는 카타르시스가 되어 활활 타올랐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면서 저에게도 첫사랑이 있다면 그런 느낌일까 싶더라고요. 연극부요? 원래는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맨날 그것만 보고 있었거든요. 일주일 내내 드라마를 봤어요. 근데 어느 날 어떤 영상이었는데 '진짜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봐'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나 연기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연극부 해볼까?' 싶었죠."
맡은 캐릭터마다 일기를 쓴다는 송건희는 이번에는 "여름이가 나타나줘서 고마워"라고 썼다. 여름이 훑고 지나간 송건희는 결국에는 어떤 배우로 자라날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나타나줘서 고마운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무대에 처음 올랐던 순간, 송건희의 첫사랑 같던 감정을 믿어본다.
"첫눈에 반하면요? 음…, 전 첫눈에 반해도 여러 번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제 감정을 확인하면서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는 직진하는 스타일이에요. 하하."
[사진 = 왓챠 제공]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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