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어떤 영화는 제시간에 도착한다. ‘리멤버’가 그렇다. 만든지 2년이 넘은 이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개봉이 지연되다 오는 10월 26일 관객을 찾는다. ‘리멤버’를 보고 있노라면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는 친일 논쟁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극중의 한 친일파는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논리를 편다.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냐?”라는 ‘암살’ 염석진(이정재)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2022년 현재까지 뻔뻔하게 살고 있다. ‘리멤버’는 끝나지 않은 친일파 청산에 총구를 겨눈다.
뇌종양 말기, 80대 알츠하이머 환자인 한필주(이성민)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필주는 60여 년을 계획해 온 복수를 감행하기 시작한다. 그는 알바 중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절친이 된 20대 인규(남주혁)에게 일주일만 운전을 도와 달라 부탁한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요? 정체가 뭐예요 도대체?! 같이 접시 닦던 사람 맞아요?” 이유도 모른 채 필주를 따라나선 인규는 첫 복수 현장의 CCTV에 노출되어 유력 용의자로 몰린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는 가운데 사라져가는 기억과 싸우는 필주는 모두 5명의 친일파 처단을 실행한다.
‘리멤버’는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노인이 가해자를 처단하는 독일영화 ‘리멤버:기억의 살인자’(2015)를 원작으로 삼았다. 이일형 감독은 치매에 걸린 노인이 가해자를 찾아가는 콘셉트만 살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바꿨다. 원작이 호흡이 느리다면, ‘리멤버’는 포르셰를 타고 질주하듯 빠르게 펼쳐진다.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한필주는 오랜 세월 동안 계획했던 암살을 치밀하게 시도한다. 노인의 액션인데도 박진감이 살아있고, 거침없고 화끈한 단죄로 몰입도를 높인다. 이성민과 남주혁의 케미도 자연스럽다. 얼떨결에 동행에 나선 남주혁은 마지막에 이르러 올바른 청산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도 얻는다.
‘리멤버’는 이일형 감독의 전작 ‘검사외전’(2016)과 닮았다. ‘검사외전’은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된 검사 변재욱(황정민)이 감옥에서 만난 전과 9범 꽃미남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의 혐의를 벗겨 밖으로 내보낸 후 그를 움직여 누명을 벗으려는 이야기다. ‘검사외전’의 변재욱과 ‘리멤버’의 한필주는 자신의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각각 한치원과 인규의 도움을 얻는다. 한치원과 인규가 도망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도와줄 수밖에 없는 설정을 만든 것도 비슷한 대목이다. 주인공이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 기지를 발휘해 위험에서 구해주는 모습에선 버디무비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검사외전’에서 정치권과 결탁하는 정치 검사 역을 맡아 빌런 연기를 펼쳤던 이성민을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캐릭터로 만든 점도 돋보인다. 이성민은 잃어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손에 문신까지 새겨가며 복수를 실행하는 한필주 역에 최적화됐다. 울분과 분노를 삭혔다가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연기 내공은 친일파 청산의 화두를 던지는 ‘리멤버’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해방된지 77년이 지났다. 프랑스는 오늘날까지 나치 부역자를 처벌한다. 독일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에게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그들은 가해자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이일형 감독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어제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곧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