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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2006 독일 월드컵이었습니다. 당신이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가.
19세 천재 소년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지요. 당신은 아르헨티나 대표팀 핵심 선수는 아니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첫 월드컵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성공시켰지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조별리그에서 골을 넣으며 월드컵 무대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월드컵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당시 당신의 나이는 정확히 18세 357일.
23세.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당신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천재 소년을 넘어 슈퍼스타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전관왕을 달성한 뒤였지요. 첫 번째 발롱도르도 수상한 후였습니다. 이제 당신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섰습니다. 자연스럽게 월드컵은 당신에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8강에서 독일에 0-4 참패를 당하며 탈락했습니다. 당신은 월드컵에서 단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하면서 큰 비판을 받아야 했지요. 대표팀에서는 작아진다는 평가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27세의 당신은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습니다. 동시대를 넘어 역대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시기였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월드컵 우승컵이 필요했지요.
선전했습니다. 분명 4년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별리그 보스니아 헤르체코비아전 1골, 이란전 1골, 나이지리아전 1골까지 조별리그 전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며 환호했습니다. 토너먼트에서도 힘을 냈고, 아르헨티나는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0-1 패배. 우승 트로피를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은 큰 여운을 남겼습니다.
슈퍼스타의 운명인 것일까요. 준우승을 일궈냈지만 당신에게 돌아온 건 큰 비난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클럽에서만 열심히 뛴다며 당신을 비하했지요. 또 월드컵 토너먼트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며, 당신의 경쟁력을 평가절하했습니다.
큰 상처를 받은 당신은 2016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아르헨티나 국민이 나서 대표팀 복귀를 호소했지요. 아르헨티나 대통령까지 대표팀 복귀를 외쳤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대표팀에 복귀한 당신. 그리고 31세에 맞이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모든 사람들은 당신에게 기회가 얼마 없을 것을 알고 우승을 강요했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에서 1골을 넣은 것이 전부. 토너먼트 무득점 기록은 이어졌습니다. 16강에서 프랑스에 무너졌지요. 당신의 월드컵 우승도 끝났다고 많은 이들이 미리 판단했습니다.
35세. 당신에게 마지막 월드컵이 다가왔습니다. 월드컵 역사상 5번째로 당신은 월드컵을 5번 출전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라스트댄스' 이름이 카타르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집어삼킬 만큼 당신의 마지막에 전 세계 팬들이 집중했습니다.
마지막이라서 깨달은 것일까요. 이번엔 달랐습니다. 이전 4번의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조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좋은 선수들은 많았지만 따로 노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름값으로만 보면 이전 대표팀이 훨씬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은 정말 지켜보는 이가 모두 감탄할 정도로 똘똘 뭉쳤습니다. 진정한 원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신도 열심히 뛰었지만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뛴 동료들. 당신의 라스트댄스를 완성시키기 위한 감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당신도 힘을 냈습니다. 출발은 최악이었습니다.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지요.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이 패배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요. 여유와 자만은 사라졌습니다. 이후 당신의 팀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8강 네덜란드전에서 몰리나에게 찔러 준 당신의 패스가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세계 전문가들이 이렇게 감탄했지요. 정말 틈이 없었는데, 그 틈은 오직 그에게만 보였다고.
당신은 토너먼트에서 약하다는 그간의 평가를 완벽히 뒤집었습니다. 16강부터 결승까지 매 경기 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됐습니다. 결승은 그야말로 드라마 그 자체였지요. 한 방송 해설자가 이런 말을 한 게 기억에 남습니다. 드라마도 이렇게 만들면 욕먹는다고. 그만큼 극적이었고, 그만큼 역대급 경기였습니다.
당신은 치열한 혈투 끝에 웃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월드컵 우승컵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라스트댄스는 아름답게 마무리됐습니다.
2006년 첫 등장해 2022년까지, 지난 16년 동안 당신은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최초의 사나이가 됐습니다.
월드컵 26경기에 출전해 역대 최다 출전자가 됐습니다. 2314분을 뛰어 최다 출전 시간도 경신했습니다. 골든볼 2회 수상도 최초라고 합니다. 통산 13골8도움. 21개의 공격 포인트 역시 역대 최다입니다. 월드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올림픽, 발롱도르까지 동시에 거머쥔 최초의 선수로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GOAT(Greatest of all time)'도 당신이 가져가지 않을까요.
이런 기록보다 더욱 값진 최초의 기록이 있습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당신을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국적이 아닌 이들이 아르헨티나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응원한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아르헨티나를 응원한 것이 아니죠. 당신을 응원한 것입니다. 당신과 동시대를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팬들에게는 큰 자긍심입니다. 당신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던 것 역시 우리 시대 팬들의 특권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경기력은 물론이고, 경기 외적으로도 말이죠. 팬들을 끌어모으는 힘, 팬들이 당신에게 영혼을 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잠시 동안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지게끔 만들었던 바로 그 힘이죠. 경기력만 좋다고 만들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위대한 모습입니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울고, 웃고, 환호하고, 상처받고, 진심과 영혼을 담은 바로 그 선수가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니. 그를 응원한 팬의 자부심은 세계 축구 팬 역사상 가장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의 팬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최고의 선수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욕구. 이것을 당신이 충족시켜 준 것입니다.
이제 월드컵에서는 당신을 보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이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았으니까요. 지난 16년이라는 시간, 5번의 월드컵 그리고 26번의 경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설 게리 네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월드컵 결승은 내 인생에서 본 것 중 가장 위대한 장면이다. 그는 월드컵에서 우승할 운명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특히 희생했다. 엄청나게 헌신했다. 이런 그가 우승하는 것이 옳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 축구의 철학, 열정 등을 담아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가 뛴 모든 경기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같은 생각입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 당신을 보며 느끼는 감정입니다. 당신은 팬들을 위해서도 정말 열심히 뛰어줬습니다. 이제는 팬들이 당신에게 화답할 차례입니다. 상처와 영광을 모두 공유한 우리의 우상에게 마지막 인사는 해야할 것 같습니다.
16년 동안 당신으로 인해 즐거웠습니다. 5번의 월드컵을 지켜보며 행복했습니다. 또 26번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선수가 돼줘 고맙습니다. 굿바이 리오넬 메시.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최용재 기자 dragonj@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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