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여행작가 신양란] 지난 칼럼에서는 로마 대중교통이 제대로 운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애를 먹은 이야기를 했다. 그 글을 싣고 난 뒤로도 우리 부부가 묵는 호텔 앞을 지나는 두 개 버스 노선이 제멋대로 운행하는 바람에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가는 일이 두어 차례 더 있었다. 또 저녁때 지하철역에서 호텔까지 걸어가는 일도 서너 차례 있었다.
아침에 걷는 것은 그런대로 견딜 만한데,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진이 빠진 상태에서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일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시내버스 운행 여부에 전전긍긍하며 로마 투어를 계속하다가 급기야 크리스마스가 왔다.
12월 25일에는 더욱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날은 로마 제국 초기 순교자인 성녀 프레세데에게 봉헌한 ‘산타 프레세데 성당’을 보기 위해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갔다. 사도 베드로가 투옥되었을 때 묶였던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거기도 문이 닫힌 상태였다.
아침부터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아팠기 때문에 더는 걷기 싫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려고 근처 지하철역(B 라인 Cavour 역)을 찾아갔는데 한창 직원 둘이서 입구 철문을 닫는 중이었다. 나로서는 대낮에 지하철역을 폐쇄하는 일이 너무나 황당했다. 그렇다고 말이 안 통하니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하철에 문제가 생겼으면 버스를 타야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거짓말처럼 단 한 대의 시내버스도 보이질 않는 게 아닌가?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을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연락부절이었던 시내버스들이 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거기보다는 교통량이 더 많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쪽은 사정이 다르겠지 싶어서 그리로 갔는데, 막상 당도하니 그곳 또한 사정이 같았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단 한 대의 시내버스도 보이지 않았고, 그 전날 탔던 트램 정류장도 텅 비어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매우 불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테르미니역 쪽은 사정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걸었다. 아침내 걸어 다니느라 고생한 다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우리로 치면 서울역에 해당하는 테르미니역에 설마 버스 한 대가 없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드디어 테르미니역에 도착한 나는 그만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지하철 테르미니역 입구는 철문이 닫혀 있었고, 역 앞 도로에는 단 한 대의 시내버스도 없었다.
테르미니역 옆 정류장에는 많은 노선 시내버스가 있어 늘 출발 대기 중인 버스들로 부산했다. 그런데 이 순간은 단 한 대의 버스조차 보이질 않으니 비현실적인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 전날까지는 부분적으로 시내버스 운행이 파행을 보일지언정, 그렇게 모든 대중교통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는 일은 없었다. 운 나쁘게 우리가 묵는 호텔 앞으로 지나는 버스가 말썽을 부릴 뿐이었던 것이다.
그쯤 되니 더 이상의 투어는 물 건너가버렸고 문제는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 걸어서 가면 두 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하였다. 택시라도 타려고 했지만, 요금 흥정을 하다가 포기하는 외국인들을 보고는 우리도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 부부는 흥정할 주변머리도 없으니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나 알아야 덜 암담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로마는 크리스마스에 오후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세 시간 동안 대중교통 운행을 전면 중단하는 전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전통이지만, 그나마 4시 30분 이후에는 운행이 재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나마 좀 안심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걸 몰라서 무척 당황했다. 혹시 다른 여행자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어리바리한 여행자의 황당했던 경험담을 이렇게 공유해본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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