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오크’, 두 공동체를 잇는 사진의 힘[MD칼럼]

'나의 올드 오크'/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영화사 진진

[곽명동의 씨네톡]

‘나의 올드 오크’에서 사진은 중요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여러 장의 스틸컷으로 시작한다. 2016년 영국 북동부에 시리아 난민이 도착하는데, 1984년 탄광 폐쇄로 삶의 의욕과 활력을 잃은 주민들은 이들에게 외국인 혐오증을 드러낸다. 사진작가를 꿈꾸는 난민 야라(에블라 마리)는 소리를 지르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영국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켄 로치 감독은 사진을 통해 난민과 폐광촌 주민이라는 두 공동체의 불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나의 올드 오크'/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영화사 진진

켄 로치 영화엔 ‘선의’를 품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앤젤스 셰어’에서는 껄렁껄렁한 불량 백수에게 위스키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사회봉사 교육관이 나온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가는 와중에도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를 진심으로 도와준다. ‘나의 올드 오크’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고 있는 TJ(데이브 터너)는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주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그가 야라를 도와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의 삼촌 역시 야라처럼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TJ는 1984년 폐광에 반대하는 광부들의 파업을 촬영한 삼촌의 사진을 야라에게 보여준다. 다 허물어져가는 창고 벽에 걸려있는 여려 장의 사진은 당시 광부들이 ‘연대의 힘’으로 힘겨운 상황을 극복해내는 모습이 담겼다. 마을주민과 광부들은 “함께 나눠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단결했다. 과거의 투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야라와 TJ는 마을 토박이들과 시리아 난민들이 모두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공간을 만들어 두 공동체가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켄 로치는 이 영화에서 ‘시간축의 사고방식’에 방점을 찍는다. 난민을 혐오하는 주민들은 공간축으로 사고한다. ‘다른 지역’에서 몰려와 자신들의 정체성에 흠집을 내고, 일자리를 뺏는다는 오해와 혐오에 찌들어있다. 역사는 어려울 때 일수록 단결하라고 일러주는데, 켄 로치는 1984년 사진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TJ 삼촌이 사진에 담아낸 연대의 정신은 야라의 마음을 움직였다. 야라는 평화로운 미용실 풍경, 한적한 마을의 분위기,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사진으로 두 공동체를 잇는다.

난민들에게 뾰족한 적의를 드러내던 폐광촌 주민들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섣부른 오해를 걷어내면 진짜 사람이 보이기 마련이다. 시리아를 떠난 것이 난민의 뜻이 아니었듯, 폐광으로 동네가 쇠락한 것 역시 주민의 뜻이 아니었다. 두 공동체는 모두 국가와 자본주의 시스템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타자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잃어가는 중이다. 켄 로치는 인생 마지막 영화에서 사진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희망의 끈을 찾아낸다.

그에게 사진은 역사의 기록이고, 연대의 상징이다. 영화가 그런 것처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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