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히트곡 제조법' 따윈 없다

[김성대의 음악노트]

히트곡을 내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히트곡을 "최대한 쉽게" 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이 책은 결국 히트곡을 낼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애당초 '히트곡 제조법'이라는 것이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예술은 재능이 90%'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 호언장담은 그저 뜬구름 잡는 허언으로 다가갈 확률이 높다. 히트곡 제조법이란 것이 정말로 있다면 캐롤 킹이나 마이클 잭슨이 진즉 써야 했을 일이다.

이 책은 앨범 [The White Room]으로 유명한 영국 듀오 KLF가 자신들의 음반 제작 경험과 음악 이론 지식을 바탕으로 히트곡 내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들의 야심은 30년도 훌쩍 지난 시대를 사는 밀레니얼 세대가 따라하기엔 너무 낡은 것이어서 책의 실용성은 책장을 넘기는 속도에 비례해 불가피한 한계와 마주한다. 가령 책 시작부터 '책값 환불'을 운운할 때 이들의 허풍과 허세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저자들의 말처럼 "은유로 범벅된 롤러코스터"일 뿐인 그것은 시시한 농담, 그럼에도 흥미로운 경험담 정도에서 소화될 수준이지, 정말 그 말들을 따라 가 히트곡의 황금률을 만날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다. 그런 걸 원한다면 차라리 시중에 나와있는 이나 <나 홀로 음반내기> 같은 책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KLF는 이 책을 "릴 테이프로 스튜디오 녹음을 하던 시절"에 썼다. 그러니까 이 새하얀 포켓북은 대중음악 역사, 그 중에서도 80년대라는 구체적 챕터를 나름 현장감 있게 볼 수 있다는 데서만 의미를 띤다. 그 외엔 대부분 과장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책의 한 구절을 가져다 쓰자면 이 책은 그야말로 "심각한 척 하지만 누가 봐도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일관한다. 재밌는 건 저자들도 자신들의 책이 그리 오랜 생명력을 띨 거라 보진 않았다는 것. 그들이 예견했듯 이 책은 1년이 지나면 폐기된 유물이 될 "하나 마나 한 소리"에 가깝다. 아무리 의미를 부여해도 이 날것의 저작은 기껏해야 "1980년대 후반 영국 사회의 특정 계층이 품었던 열망을 기록하는 사회사의 일부"에 가까울 뿐인 것이다. <히트곡 제조법>은 한마디로 실용서를 가장한 역사책이다.

이 책이 가진, 히트곡을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실용총서'로서 기능은 오히려 번역자 미묘가 207페이지부터 10페이지 정도에 걸쳐 썰을 푼 부분에 있다. 스스로가 앰비언트 음악가이자 대중음악평론가, 아이돌 웹진 편집장인 미묘는 KLF의 영국식 농담과 유머를 따라 하며 책 여기저기에 주석들을 촘촘히 달다 마지막에 히트곡 만들기에 대한 자신의 방법론을 압축적으로(그리고 현실적으로)풀어냈다. 이는 마치 나중에 자신이 한국형으로 다시 쓸 '히트곡 제조법'을 위한 습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용서적으로선 자격미달일지 몰라도 "모든 음악은 이미 흘러간 것의 합집합 또는 부분집합일 수 밖에 없다"는 KLF의 사유는 꽤 의미심장하다. 또 하나, 217페이지부터 시작돼 이 책을 마무리 짓는 '히트 음반 디자인 체크리스트' 챕터는 보다 해박한 지식과 글빨로 무장한 필자가 따로 단행본으로 옮겨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사진제공=워크룸프레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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