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한상숙 기자] 넥센 히어로즈 정수성(32)의 올 시즌은 유난히 혹독했다. 시즌을 앞두고 치른 마무리훈련과 스프링캠프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정수성은 김시진 감독이 가장 돋보인 선수로 꼽았을 정도로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팀 동료였던 이택근이 LG로 이적하며 정수성을 향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시즌 초반 정수성은 타율과 출루율 모두 3할을 기록하며 넥센 테이블세터진을 이끌었다.
하지만 갑자기 시련이 찾아왔다. 정수성은 시즌 초반 A형 간염을 앓으며 곤두박질 치는 성적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감기몸살로만 생각했던 병세는 그 사이 점점 악화됐고, 정수성은 결국 4월 11일 엔트리 말소 이후 단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2군에서도 그의 좌절은 계속됐다. 한 번 자리잡은 병마는 그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경기 후에는 어김없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매일 고열과 구토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꾀병 부리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시선이었다.
어느덧 프로 13년차가 된 정수성은 더이상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은퇴한 친형 정수근(33·전 롯데 자이언츠)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아픈 몸을 추스린 정수성은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다. 마무리훈련에 참가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정수성을 만났다. 공백기를 겪으며 야구에 대한 애정은 한 뼘 더 깊어졌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너무 많이 아팠다.
당시 상태가 어땠길래?
일상 생활도 못 할 정도였다. 그 기간이 무척 길었다. 시범경기 끝나고 부터였으니까. 처음에는 A형 간염인지도 몰랐다. 단순한 감기몸살인 줄 알았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간염이었다. 총 4달 정도 쉬었다. 올 시즌 거의 놀았다고 봐야한다.(웃음)
다른 곳은 이상없나?
괜찮다.
주로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의 훈련을 소화하는 것 같던데?
기술 훈련은 아직 무리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갑자기 많은 훈련을 소화하면 또 다칠 염려가 있다. 지금은 몸을 만드는 시기다. 단계별로 진행해야 한다.
오랜만에 목동에서 훈련하는 기분이 어떤가?
친한 선수들 만나니 반갑다. 형들이 '너 이제 한물 갔어'라고 농담으로 말한다. 오래 본 형들이니까 그런 장난은 다 이해한다.(웃음)
올 시즌 팀에 합류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을텐데.
올 해가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했다. 시즌 전 일본 마무리 훈련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스프링캠프에서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큰 시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팠다. 다 하늘의 뜻 아니겠나. 무조건 내 탓이다. 어쩔 수 없다. 감독님과 코치님,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선수로서의 욕심도 컸을텐데 아쉽다.
선수마다 능력이 다르다. 주전, 비주전으로 모두 뛰어보니 주전으로 나설 때의 뿌듯함과 비주전의 서러움을 알게됐다. 덕분에 특별한 욕심은 없어졌다. 내 위치에서 능력이 닿는데까지 하고 싶다. 내가 잘 하면 주전으로 기용되는 것이고,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백업으로라고 1군에 있는게 어딘가. 이 자리를 부러워하는 선수들도 많다.
다음 시즌은 어떻게 보나?
몸은 됐는데 실력은 장담할 수 없다.(웃음) 실력이 안 되면 경기에 못 나가는 것 아닌가. 프로는 무조건 실력이다.
올 시즌 거의 2군에 머물렀다. 2군 생활은 어땠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집이 멀다는 게 조금 불편했을 뿐이다. 장소만 다를 뿐 야구는 똑같다. 상관없다. 성적은 평균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 곳에서도 계속 아팠다. 경기에 나갔다가 며칠 쉬는 것을 반복했다. 할만하면 아프다고 하니까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일주일 훈련 중 3-4경기를 뛰면 나머지 경기는 아파서 못 나갔다. 열 나고, 토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어떤 날은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초반에는 10kg까지 살이 빠졌다. 지금은 5kg정도 다시 찐 상태다. 살면서 이렇게 병원에 자주 간 적은 처음이다.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어서 다른 선수들과 비슷하게 페이스를 올려야 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저번주에는 욕심 때문에 무리했더니 또 3일동안 아프더라.
정수성의 빈자리를 잘 메운 선수도 있다.
당연하다. 순리라고 생각한다. (장)기영이도 고생 많이 했다. 내가 잘 해서 같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내가 실력이 안 되면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다시 저 자리를 뺏어야지'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기영이가 워낙 좋은 후배다. 룸메이트도 했었고. 기특하다.
형(정수근)의 근황은?
나에게 부담이 될까봐 형이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몇 주 전에 얼굴은 봤다. 형은 나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형제니까, 식구니까 나는 형을 감싸주고 싶다. 아직도 형은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다. 형이 야구를 잘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수준의 선수인지 잘 알고 있다. 늘 날카로운 조언을 해준다. '부푼 마음을 갖지 말아라. 베스트 라인업은 무리다. 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식이다. 어렸을 때는 형의 냉정한 조언이 서운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형의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됐다.
현재 형은 자신의 위치에서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형을 구제불능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형이다. 야구인으로서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가족으로서는 감싸주고 싶다.
특별한 건 없다. 올 해 초반까지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오직 아프지 않고 1군에서 생활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내 목표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야구를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운동하면서 늘 해왔던 생각이다. 선수라면 누구나 고민하게 된다. 늘 한결같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늦게나마 대학교에도 진학했다. 원래 꿈은 초등학교 야구 감독이었다. 대신 영어로만 하는 야구다. 우리 때처럼 운동만 하는게 아니라 공부와 병행하는 야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매일 영어학원에 다닌다. 원어민과 하는 회화수업과 기본 문법 수업 등 3과목을 듣는다. 그동안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침 시간이 맞아 시작하게 됐다.
은퇴 후 진로를 위한 선택인가?
꿈도 있고, 진로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야구 선수를 그만두면 나에게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르니까. 대학교도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다니기로 결심했다.(정수성은 현재 초당대학교 사회체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교사 자격증을 딸 생각이다. 야구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내에게 항상 얘기한다. 운동선수는 늘 옷 벗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내년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에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후 선수 생활에 대해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뒤) 마음속으로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형이 나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형은 늘 나에게 죄를 지은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런 말을 들으니 더 속상하다. 형이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내에게는 항상 고맙고. 못난 아들을 둔 부모님께는 늘 죄송하다.
[넥센 정수성. 사진 = 넥센 히어로즈 제공]
한상숙 기자 sk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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