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어찌보면 당연한 금메달. 하지만 그에게 이 금메달의 의미는 남달랐다.
야구 대표팀은 19일 중국 광저우 아오티 구장에서 열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만과의 결승에서 9-3으로 승리하며 2002년 이후 8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추신수를 비롯한 병역 혜택이 걸려 있었던 11명에게도, 2차례 대만과의 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끈 류현진에게도 모두 의미있는 금메달이었지만 윤석민에게도 이번 금메달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뛰고 싶어도 뛸 수 없었던 윤석민
윤석민은 중국과의 준결승 이전까지 단 한 차례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운드에 올라 공은 한 개도 던지고 내려오지 못했다.
첫 경기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윤석민은 13일 대만과의 예선 경기에 류현진에 이어 7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이내 마운드를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 엔트리에 윤석민의 이름만 빠지며 경기에 뛸 수 없었던 것. 결국 윤석민이 퇴장당하는 것으로 이 촌극은 마무리됐다.
14일 홍콩전에서도 윤석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당초 윤석민은 7회부터 등판할 예정이었지만 대표팀이 6회말 공격에서 대거 6점을 뽑아내며 15-0이 됐다. 규정에 따라 이대로 경기가 마무리됐고 윤석민의 등판은 또다시 미뤄졌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투수 중 가장 컨디션이 좋다"고 호언장담하던 윤석민은 18일 중국과의 준결승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양현종에 이어 7회부터 등판한 그는 1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내며 성공적인 광저우 데뷔전(?)을 치렀다.
▲ 도하 악몽 씻었다
한국 야구는 최근 몇 년간 국제무대에서 여러차례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 2009년 WBC 준우승까지 굵직굵직한 대회마다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만은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병역 미필 선수 위주로 구성됐던 당시 대표팀은 대만은 물론이고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출전한 일본에도 패하며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당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선수 7명이 출전했다. 때문에 이들은 다른 대표팀 선수들보다도 이번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을 수 밖에 없었다. 윤석민도 그 중 한 명이다.
윤석민은 중국과의 준결승에 이어 대만과의 결승에서도 호투를 펼치며 자신의 힘으로 도하 악몽을 깔끔하게 씻어냈다.
▲ 충격의 2010시즌 뒤로하고 유종의 미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2009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KIA는 올시즌 5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는 윤석민의 시련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윤석민은 6월 18일 SK전에서 강판 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라커문을 오른손으로 가격하다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재활 끝에 마운드에 복귀했지만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KIA는 롯데와 4강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윤석민은 8월 15일 경기에서 홍성흔의 왼쪽 손등을 맞춘 데 이어 8월 24일 경기에서는 조성환의 머리를 맞히며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커다란 충격을 받고 어지러움을 호소하던 그는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후 1군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2010시즌을 마무리했다.
윤석민은 이번 금메달로 2010년을 슬픔과 아픔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사진=윤석민]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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