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장] 북한군 연평도 포격으로 숨진 배복철·김치백씨 시신 인천 길병원에 안치
"웬일이야 이게. 불쌍해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아. 아이고. 어떻게 해."
일주일 전 연평도로 들어갔던 동생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자, "아이고, 아이고"를 되뇌며 오열하던 故 배복철(59)씨의 누나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해가 저물어가는 25일 오후 5시경 북한군의 포격으로 숨진 배복철(59), 김치백(60)씨의 관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하얀 천에 둘러싸여 인천 해양경찰서 함정 전용부두로 들어왔다. 배씨의 두 딸은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주일 전, 막내 동생과 함께 연평도 공사현장 처음 들어간 형
고 배복철씨가 연평도 해병대 독신자 숙소 신축공사 현장에 막내 동생 배기남(53)씨와 함께 처음 들어간 것은 지난주 수요일(16일). 4남 1녀 중 장남인 배씨는 오랫동안 미장장이 일을 해왔다. 공사현장에서도 '미장 반장' 역할을 맡았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배기남씨는 "처음에는 포탄이 산으로 떨어졌고, 그 다음에 공사현장으로 떨어지면서 건물이 흔들렸다"며 "놀라서 지하에 있는 대피소에 들어갔는데 형이 없기에 다른 데로 피신한 줄 알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형이랑 평소에 성격이 안 맞아서 말대꾸했던 게 너무 미안하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사고현장에 있었다는 배씨의 동료 홍아무개(70)씨는 착잡한 표정으로 "배씨는 항상 웃고 여러 사람을 배려하던 사람이었다"며 "두 사람(배복철, 김치백씨)만 떼어놓고 와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불과 일주일 정도만 함께 일한 사이였지만 지인들이 기억하는 김치백씨의 생전모습은 배복철씨의 그것과 비슷했다. 김치백씨의 이웃주민 임아무개(69)씨는 "김씨는 항상 웃고 농담도 잘하고 유머도 많았던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임씨는 아직도 김씨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는 듯 "지난주에 김씨를 만났을 때만 해도 얼마 안 있으면 (연평도에서) 나올 거라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중풍에 갑상선 수술까지...아픈 몸 이끌고 돈 벌러 갔던 이웃
김씨와 임씨가 알고 지내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인천 가정동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다. 김씨와 임씨는 '가정동 연합 주민대책위'에 함께 소속되어 있다. 임씨는 "김씨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몇 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다가 지난여름에는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며 "그런데 주위에 재개발 보상을 받은 이웃들이 하나, 둘 이사하기 시작하니까 이사비라도 보태보겠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지난 8월에 연평도에 갔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목수일을 해왔던 김씨는 연평도 공사현장에서 내년 6월까지 '총괄반장'으로 일할 계획이었다.
임씨는 "23일 아시안게임을 보고 있는데 연평도 포격 장면이 나오기에 '옛날 뉴스 틀어주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이후 바로 김씨한테 전화를 했는데 계속 통화중이고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배복철씨와 김치백씨의 시신은 5시 30분경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두 사람의 합동분향소에 도착한 배복철씨의 누나는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뭐라도 먹고 살아 보겠다고 그 지랄을 하다가...이게 뭔 꼴이야. 이게 뭔 꼴이냐고."
김치백씨 누나 역시 동생의 영정사진 아래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냈다.
"왜 너만 죽느냐고. 다른 사람들은 암씨렁도 않은디. 평생 동안 고생만 하고."
김씨의 가족들은 "아직 노모가 아들이 죽은 걸 모른다"며 "사진 촬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홍현진 (hong698)
마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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