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강지훈 기자] 1988년 겨울, 만년 하위팀 태평양 돌핀스의 수장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해외전지훈련을 떠난 다른 팀들과 달리 오대산에 훈련캠프를 차렸다. 선수들은 하루 10시간씩 산과 씨름했고, 땀에 젖은 몸은 계곡물 얼음을 깨고 들어가 식혔다.
이 '지옥훈련'의 성과는 눈부셨다. 극기훈련을 통해 담금질한 정신력으로 똘똘 뭉친 태평양은 박정현-최창호-정명원, 3명의 무명투수를 축으로 인천에 프로야구가 생긴 이래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다. 태평양의 돌풍에 고무된 타구단들도 이듬해 앞다퉈 선수들을 극기훈련 캠프로 보내면서 이 극기훈련은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다.
20여년이 지난 2010년 겨울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2월 19일 개정된 야구규약 136조는 "구단 또는 선수는 매년 12월 1일부터 익년 1월 31일까지의 기간 중에는 야구경기 또는 합동훈련을 할 수 없다. 전지훈련 관계로 선수들이 요청할 경우 1월 중순 이후 합동훈련을 실시할 수 있지만, 해외 전지훈련은 1월 15일부터 시범경기 전까지로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11월 안에 마무리훈련을 종료한 팀은 롯데 넥센 한화뿐이다. 나머지 5개팀은 모두 비활동기간까지 마무리훈련을 하고 있고 특히 지난해 우승에서 올 시즌 5위로 추락한 KIA 타이거즈는 24일이나 초과한 12월 24일까지 마무리훈련을 이어간다.
엄청난 비용부담을 딛고 11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무려 50일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마무리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LG 트윈스 박종훈 감독은 "8년 연속 4강에 가지 못한 팀이 1위팀보다 훈련이 적어서야 되겠느냐"고 밝혔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3번의 우승을 일궈낸 SK 와이번스의 강도높은 마무리훈련에 영향받았다는 뜻이다.
2008년 초 현대사태로 8개구단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놓이자 8개구단 단장들은 긴축경영을 위해 해외 마무리훈련을 하지 말자고 합의하면서 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안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8년 우승팀 SK가 해외 마무리훈련을 강행하고 비활동기간에 계속 훈련하면서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자 이제는 거의 모든 팀이 해외 마무리훈련과 비활동기간 훈련을 당연시하고 있다. 벌금은 흐지부지됐다.
이런 풍토가 지속되자 프로야구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도 상당수 주인공들이 빠질 가능성도 생겼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프로야구 창립기념일인 오는 11일 열리지만 일부 감독들은 마무리훈련을 이유로 불참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당연히 선수들도 참석이 어렵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는 이날 감독자회의를 여는 방안으로 잔칫집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와 같은 논란은 지난해도 있었다. 손민한 선수협회장은 '팬들과의 대화'에서 "비활동기간 훈련이 도움이 되는 선수들도 있지만 비활동기간에 방송통신대학 등을 다니면서 은퇴 후를 대비하는 일본선수들처럼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적응하는 기간이 분명히 필요하다"며 "없는 규정을 새로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을 나쁜 길로 이끄는 것도 아니다"면서 비활동기간 훈련 문제에 대한 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1월 20일 이전 전지훈련을 떠날 경우 해당 구단 상조회에 벌금 5000만원을 부과한다'는 규정도 만들었으나 벌금을 낸 이는 없다. 이에 선수협은 지난 2일 프로야구 대표자 회의를 개최해 비활동기간 중 휴식과 은퇴 후 삶의 준비를 골자로 마무리훈련의 개선을 요청했다.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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