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교토대생의 교토이야기(8)] 자코 아저씨의 비밀, 한류와의 인연
일본유학생활 동안 나의 사랑방이 된 자코에는 ‘드라마에 꼭 나올 것 같은 훈훈한’ 일상이 있다. 그 정겨운
풍경을 누구에게든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자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이런저런 설명을 드리며 “자코 이야기를 한국신문에 한 번 써 보려고요” 하고 얘기를 꺼내자 아저씨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내가 쓰고자 하는 인터넷 신문의 방문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또 어떤 주제를 주로 다루는 지 자세히 물어보시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마음속으로 “잘 됐구나!” 하고 안심하려는 찰나, 자코 아저씨의 한 마디에 나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사실 대학에서 신문학 전공했었어~”
자코 아저씨의 경험은 ‘신문학 전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자코에 놓여있는 한 권의 책, ‘와세다 스포츠신문 역사 50년’에는 여기저기 책갈피가 꽂혀있다. 아저씨는 페이지마다 적혀있는 “다카하시(高橋) 편집장”을 가리키며 “실은 내가 대학 때 편집장 했었어, 허허~ 그런데 와세다 대학신문 편집장 출신들은 다들 여기저기 방송국이나 신문사에서 꽤나 높은 분들이 되었는데 나만 교토에서 이렇게 지내.” 하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과연, 평소에 느꼈던 자코 아저씨의 비범하신 성격과 보통이 아닌 입담, 그 모든 것의 원천은 바로 “편집장님”에 있던 것이다!
그런 자코 아저씨를 상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소개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을지 모르지만, 가끔씩 “이거 기사거리로 쓰면 어때?”, “저번 주 기사는 뭐였어?” 하시며 여러 도움을 주셔서 이렇게 매주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자코 아저씨가 가장 “편집장님”처럼 변할 때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냉정하면서도 촌철살인의 평가를 내리시는 아저씨와 한류드라마 매니아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실 아주머니.
그 두 분께 느긋하게 한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야기는 본격적인 한류가 일본에 상륙하기 전, 한국 영화를 가끔 접하셨던 일로 시작된다.
“NHK에서 ‘토요명화’같은 식으로 소개되는 영화에서 가끔 한국 영화도 볼 수 있었어. 워낙 중국이나 대만 등 아시아 권의 예술영화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기획이기도 했었고, 사실 그 당시엔 ‘한국 영화’라는 사실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본 편은 아니었지. 그러다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같은 작품을 보고 ‘한국에서 이렇게 수준있는 영화를 만드는 구나’ 하고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리고 테이블 옆에서 꺼내신 책 한 권, 빛 바랜 아시아 각국 영화 가이드 잡지가 있었다.
“한국 영화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고는 이런 잡지나 ‘아시아 영화 인물사전’ 같은 책들에서 정보를 얻어가면서 보기 시작했어. 이 시기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구해서 빌려다 봤어.”
본격적인 한류 열풍 이전에도 한국 영화와 더불어 한국 드라마도 간간히 소개되는 일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교토지방방송 같은 작은 민영방송국이 오히려 한류의 선두주자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민영방송은 워낙 경영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를 직접 제작하기는 힘들었지. 시청률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으면 쉽사리 제작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시청자 층을 확보하려면 외국 드라마를 수입해 오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었지.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를 접한 건 교토방송에서 방영했던 비밀(MBC, 2000년)이었어.”
그리고 자코의 두 내외분이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되는 대작이 연이어 등장한다.
“비밀 이후 괜찮게봤던 드라마가 모래시계(SBS, 1995)였어. 모래시계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성과 더불어서 최민수, 박상원의 연기 수준이 워낙 높아서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작품이었지. 우선 일본 드라마에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일이 거의 없는데 모래시계에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실제 보도 영상을 드라마 중간에 삽입하는 정반대의 발상이 놀라웠어. 우리 세대는 일본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 사건이라든지, 학생운동을 경험했으니까 공감대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모래시계 이후로 자코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최민수의 광팬이 되셨다고 한다. 특히 아주머니는 “완전 내 스타일이었어~” 하시며 소녀처럼 좋아하셨는데, 혹시 아저씨가 질투를 하실까 물어보았더니 아쉽게도(?) 모래시계의 최민수는 남자가 봐도 멋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뒤 속속 한국 드라마가 소개되기 시작했어. 그 다음에 본 드라마가 백야(SBS, 1998)였는데 또 한번 충격을 받았지. 러시아 로케이션 촬영이나 이야기의 방대한 스케일 같은 건 일본 드라마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요즘 일본에서 아이리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는 하는데 모래시계나 백야와 비교해보면 배우들 연기도, 구성도 비할 바가 못되지. 우리 같은 한류 매니아들에게는 성에 안 찬다고 할까. (웃음)”
한국 드라마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가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 계기는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일본 진출이었다. 최민수에게 흠뻑 빠지신 것에 더해 한석규, 최민식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소개되면서 두 내외분은 영화에도 점점 손을 뻗기 시작하셨다. 배우별, 감독별 작품을 섭렵하신 두 분은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리베라메(2000)같은 영화까지 보셨다.
“한국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균형이 잘 잡힌 작품이 많다는 거야. 일본에서 소위 예술계열 영화라고 하면 감독이 자기 세계에만 갇힌 느낌이 든다고 할까, 깊이 공감이 가는 영화는 찾기가 힘들어. 배우들의 연기력도 그렇고. 하지만 김기덕 감독 작품을 보면 예술성은 예술성대로 갖고 있으면서 연기자들의 수준도 높고, 종합적으로 잘 짜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는 본격적인 한국, 일본의 영화 비교로 이어졌다. 일본의 영화산업은 관객 수가 적어지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의존하게 되었다. 영화 제작사들도 적어지는 관객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흥행만을 목적으로 하여 20대 전반의 연령대를 타깃으로 한 오락 위주의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나왔던 춤추는 대수사선 3(2010)같은 영화는 정말 흥행만을 생각하고 만든 영화지. 한국은 배우들 명예나 연기 생명을 걸고 연기를 하는데, 일본은 흥행을 목적으로 연기경험 없는 아이돌을 영화에 내보내기도 하니까 더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기엔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어.
나이있는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가 없던 참에, 조폭 마누라, 친구, 주유소 습격사건,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등등 우리가 봤던 한국 영화들은 영화 속의 울고 웃는 포인트가 공감이 되니까, 일본의 30대 이상의 관객 층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볼 수 있는 거지. 일본 영화가 매니아 층을 노린 무거운 영화 혹은 20대 초반을 노린 가볍기만 한 영화들로 극단적인 두 갈래 길을 걸었다면 한국 영화는 그 틈새를 파고들어서 보통 관객들이 즐기기 좋은 요소들로 인기몰이를 했다고 생각해.”
자코의 두 내외분이 이렇게 한국 영화에 빠지실 동안, 일본 민영방송에서는 ‘겨울연가’의 욘사마와 ‘대장금’의 장금이 열풍이 불며 본격적인 한류 바람이 일어났다. 겨울연가와 대장금은 수많은 한국 드라마의 일본 진출에 초석을 놓은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 둘을 계기로 다양한 장르의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소개되었는데, 자코의 두 내외분은 특히 사극에 깊이 빠지셨다.
사극 이야기를 시작하자 보여주신 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한국 사극 카탈로그’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은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사극을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의 시대별로 구분해서 모두 정리해 둔 것뿐 아니라, 열혈 팬들을 위한 ‘시대별 왕조 계보’, ‘후삼국시대의 한반도 지도’, ‘조선 전도’ 등 알짜배기 부록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자코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일본 드라마는 하나도 안 보실까? 한국 사극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 있는 것일까?
“일본 드라마는 최근 몇 년간 정말 한 편도 안 봤어. (웃음) 일본 사극은 정해진 패턴이 자주 보여. 시대 배경은 열에 아홉은 전국시대에서 막부 말인데 예고편만 한 5초 정도 보면 어떤 내용일지 뻔히 보여서 통 재미가 없어. 연출이나 카메라 앵글 같은 면에서도 통 바뀌는 것이 없으니까 새로운 것이 없어서 영 흥미가 없어. 그에 반해서 요즘 보고 있는 한국 사극인 용의 눈물을 생각하면 정말 비교가 안 될 정도지. 한국 사극은 건국에서 최후까지 국가의 일대기를 다루는 스케일도 다르고, 전투 신의 규모도 대단하지. 역시 가장 큰 차이는 연기력이야. 유동근의 내면 연기 같은 장면은 정말 대단했어. 용의 눈물 같은 드라마는 클로즈업이 심해서 연기력이 보통이 아니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보신 드라마는 돌아온 일지매(MBC, 2009)라고 하셨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방영되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같은 영상미도 갖춘데다, 스토리의 구성 역시 탄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이렇게 민영방송을 중심으로 다양한 드라마가 일본에 소개되고, 그 시청자 층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나 요즘 눈에 띄는 건, 한류 붐의 시작이 욘사마를 좋아하는 아줌마 전유물이었다면 그 인기가 아저씨 층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야. 한국스타 팬미팅에 아저씨들이 찾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 아저씨에게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 있던 것은 DVD 대여점의 역할이 컸어.
대부분의 DVD 대여점에서 최근 2,3년 새에 한국 드라마 코너를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가게마다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 전편을 구비해 놓은 덕분에 샐러리맨들이 퇴근길에 잠시 들려서 DVD 두 세편 정도 빌려다가 자기 전에 꼬박꼬박 보고 자는 식의 모습으로 인기가 많아지고 있지. 최근에 열린 한혜진 팬 미팅에서 10대에서 60대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지.”
한류 이야기의 마무리는 역시 화제의 소녀시대였다. 특히나 요즘 자코 아저씨께서 푹 빠지신 눈치다. 자코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몇 년째 보고 계신 NHK 한글 강좌에서 소녀시대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는데, 교재에 실린 인터뷰 내용까지 열심히 보여주시면서 “소녀시대가 이렇게 무대 밖에서 인터뷰 하는 건 처음 봤는데 역시 대단해~” 하시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최종적으로 한류가 카라,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그룹까지 퍼졌지. 카라와 소녀시대는 주로 20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그건 한국 아이돌 그룹이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일본 아이돌과 달라. 그 예로 AKB48과 비교해보면, AKB는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의 의도처럼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결국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 여자 아이들로 구성되어있다는 느낌이 강해. 때문에 동경의 대상보다는 만나러 간다는 친근한 이미지가 더 강하지.”
한류가 아직 파고들지 못한 영역은 일본의 20대 남자들이라고 아저씨는 덧붙이셨다. 그 이유는 뜻밖에도 일본 남자 대학생들의 미숙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즘 남자 대학생들은 유치하다고 할까…… 취향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어. 아주 세련된 취향을 가진 건지, 아주 쓸데없는 취향인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교토대를 포함해서 80퍼센트는 쓸데없는 취향에 가깝다고 생각해. (웃음) 다 큰 남자애들이 로리콘 같은 취향으로 AKB에게 열광하는 걸 보면 그렇지. 일본 남자 대학생들에 대한 이런 평가는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코에 오는 대학 교수님들도 똑같이 말하고 계셔. 여학생들이 훨씬 적극적이고 바깥 세상에 관심도 많다고. (웃음)”
앞으로 일본 20대 남자들에게 한국 아이돌 그룹이 얼마나 인기를 끌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내 주변의 일본 남자아이들은 “카라 엉덩이 춤 장난 아냐!” 정도의 관심에서 멈추었지만, 소녀시대 멤버 이름을 다 외우는 열성 팬이 생긴다면 또 다른 한류 열풍이 시작되지 않을까? 그 때가 되면 자코의 ‘편집장님’과 “일본 남자 대학생들이 정신차렸나?”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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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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