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한 인도인 대학생 집단괴롭힘이 부른 참극
'남들 보는 앞에서 강제로 바지 벗기기, 별명은 '빈 라덴'...'
2008년,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테몬가쿠인대학(追手門学院大学)에 다니던 한 재일 인도인 학생(당시 20세)이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8층 자택에서 뛰어내린 학생의 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학교에서 당하는 집단 괴롭힘으로 저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저에게는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는 병환을 앓고 있던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집안의 기둥 역할을 했다. 그의 가족은 이전 인도 요리점을 경영하며 한때 풍족한 생활을 누렸지만,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며 가계가 급속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인도 요리점을 이어나가겠다'는 일념 하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성적이 학교 내에서 1, 2등을 달릴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자살 전날에는 학내 장학생으로 추천되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집단 괴롭힘을 암시하는 유서 이외에도, 자살 이틀 전에는 친구에게 휴대전화 문자로 "매일 학교에 갈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며 고민 상담을 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비극은 이어졌다. 사건 발생 약 1년 후, 자택에서 요양 중이던 아버지도 "아들을 만나러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들이 뛰어내린 장소를 찾아가 생을 마감했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졸지에 잃은 어머니는 <산케이신문>의 취재에 "떠나버린 아들과 남편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대학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철저하게 조사해줬으면 한다"라고 호소했다.
사고가 일어난 대학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극적인 사건이 화제가 되자 일본 언론에서는 대학의 은폐의혹이 드러났다. 대학 측이 유족의 조사와 원인 규명 요청을 "조사 대상인 학생의 부모로부터 불평이 나오고 있다" 등을 이유로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또 대학 측은 자살사건 발생 반년 후 상담한 변호사로부터 "조사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재차 권유받았음에도, "대학과 초・중고교 집단 괴롭힘 사건은 다르다" "다른 변호사는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등을 이유로 방치를 계속했다.
올해 2월에는 유족에게 위문금으로 30만엔을 건네며 '서로에게 아무런 채권・채무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합의서 서명을 강요한 사실도 밝혀졌다. 거기에 유족과 학교 사이에 유일한 연결통로 역할을 했던 한 교수를 사건 대책 위원회로부터 제외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에 유족과 피해자의 친구 등으로 구성된 '자살사건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모임'이 결성돼 지난 10월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 등의 사건 전모의 파악 및 유족에게 사죄, 재발 방지를 포함한 성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 모임에 참여한 피해자의 친구에게서 나온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증언에 따르면, 피해 학생을 따돌린 집단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바지를 벗기거나, 불꽃놀이 폭죽을 얼굴을 향해 겨누는 등 악질적인 장난을 거듭했다. 그의 별명을 이슬람 테러집단 지도자 '빈 라덴'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또 "너를 괴롭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너를 보고 있으면 괴롭히고 싶어진다"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피해 학생은 "(그들이 나에게)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킨다"라며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친구는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한 후 매일같이 "그를 지켜줄 수 있었을텐데..."라며 괴로워한 걸로 전해진다.
이 같은 움직임이 계속되자, 대학 측은 올해 10월 뒤늦게 변호사 등으로 이뤄진 '제삼자 위원회'를 설치, 사건을 재조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동 학교의 마쓰모토 나오키 부학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끄러운 사건을 일으켜 죄송하다"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조사 결과는 27일 공표될 예정이다. 집단 괴롭힘 사실을 지속적으로 부정, 사건을 은폐해 온 학교. 3년 만에 사건이 규명될 수 있을지 열도의 눈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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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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