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메일맨] 올 시즌 신인 드래프트 1순위이자 강력한 신인왕 후보인 안양 한국인삼공사 박찬희가 같은 팀 선배이자 11년 전 21세기 첫 신인왕이었던 김성철에게 보내는 편지
TO. 성철이형
안녕하세요. 성철이형, 찬희입니다.
사실 드릴 말씀은 별로없는데(ㅎㅎ 농담입니다) 올 한 해 고마웠던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니 형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올 한 해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위해 훈련한 기억밖에 없네요.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막내로 뻘쭘해 있는 저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시고 6개월이나 한 방을 같이 쓰면서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결국 제가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최종엔트리까지 포함돼 귀중한 은메달까지 목에 건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제가 좀 덜렁대고 좋게 말하면 쿨한 성격이잖아요. 나쁜 것도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데 형은 꼼꼼하게 경기중에서나, 사생활에서나 일일이 지적해 주시는 게 처음에는 언짢기도 했습니다. 형이 원하는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저한테 화도 났고요.
하지만 개인 코치처럼 형이 지적해 주신 게 저도 모르게 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됐나 봐요. 사실 저는 어떤 부분이 성장했는지 콕 집어서 말 못하겠는데 주변에서는 모두 발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아시안게임때문에 올 여름내내 팀과 호흡을 못 맞춰 원래 제 포지션인 포인트가드가 아닌 슈팅가드로 출장하는 경우도 많아 미숙한 점이 많은데 감독님과 형의 조언에 따라 대학교 때 해 보지 않았던 포스트업 공격도 늘어나고 불필요한 외곽 슈팅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 6개월동안 같은 방을 쓰다가 소속팀 돌아와서 혼자 방 쓰신다고 하니까 제가 슬픈 표정으로 '이제 저를 버리시나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런 거 아니야'라고 당황하시던 형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사실 장난이었어요. ㅎㅎ 6개월동안 형 빨래 담당할 때 무릎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1-2개 잃어버려서 받던 구박도 이젠 안 받게 됐으니까요. ㅎㅎ
여전히 전 포인트가드로서 리딩력이나 경기운영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패스능력이 좋고 경험이 풍부한 형이 공수 모두 길을 잡아주셔서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귀찮으실 때도 있을텐데 선배로서 후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점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8위로 처져 있지만 우리팀이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르도록 꼭 힘이 되겠습니다. 그게 올 시즌 제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신인왕까지 덤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형이 저랑 정현이를 불러놓고 '니들이 내 뒤를 이어라. 니들끼리 치고받아라'고 싸움붙이신 것(?)처럼 정현이와 선의의 신인왕 경쟁도 펼칠게요.
날씨 추워졌는데 아시안게임 때 다치신 무릎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ROM. 박찬희
<편집자 주>'메일맨'은 프로농구 스타들이 평소 고맙거나 미안했던 선수, 감독, 관계자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는 릴레이 코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림 안에 볼을 집어넣었던 '메일맨' 칼 말론처럼 올 시즌 내내 농구스타들 마음의 가교 역할에 충실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 KBL]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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