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고동현 객원기자] 잠수함 선발 명맥이 올시즌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프로야구 출범 이후 1990년대 중후반까지 잠수함 선발투수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여러가지 이유가 겹치며 어느 순간 잠수함 선발투수를 보는 일은 쉽지 않게 됐다. 잠수함 투수가 선발로 나오더라도 '임시선발'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시즌은 달랐다. 두 명의 신예 잠수함 투수가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이며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주인공은 이재곤(롯데)과 박현준(LG).
▲ 잠수함 선발로 인상적인 모습 보인 이재곤-박현준
2007년 롯데에 입단한 이재곤은 지난해 깜짝 활약을 선보였다. 시즌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2군에 머물렀지만 이후 롯데 선발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8승 3패 평균자책점 4.14. 22경기 중 19경기가 선발 등판이었으며 8월 3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생애 첫 완투승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박현준은 소속팀을 SK에서 LG로 옮기며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SK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선수란 평가 속에서도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 LG로 이적한 뒤에는 서서히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SK에서는 8경기 중 단 2경기에만 선발 출장했지만 LG 이적 후에는 12경기 중 9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기복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수치에서 SK 때보다 나아진 성적이었다. 지난해 전체 평균자책점과 WHIP은 6.55, 1.51이었지만 LG에서의 기록은 5.88, 1.37이었다. 삼진/볼넷 비율 역시 SK에서는 10/9로 1:1에 가까웠지만 LG에서는 삼진(36개)을 볼넷(18개)에 비해 두 배 더 잡아냈다.
▲ 닮은 듯 다른 이재곤과 박현준
잠수함 투수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지만 둘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이재곤은 잠수함 투수 특유의 모습을 갖춘 '전통적 기교파'라면 박현준의 경우에는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유형이다.
잠수함 투수의 필수 지참품인 싱커가 주무기인 이재곤은 지난해 무수히 많은 땅볼을 만들어냈다. 그가 유도해낸 221개의 땅볼은 전체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뜬공은 72개 밖에 되지 않는다. 땅볼이 뜬공에 비해 3.07배 많다. 이는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단연 1위다. 2위인 김선우(두산)가 기록한 2.31배와도 큰 격차다.
반면 박현준은 뜬공 아웃 40개를 유도하는 동안 땅볼 아웃은 71개 뿐이었다. 땅볼이 뜬공에 비해 1.78배 많았다.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이지만 잠수함 투수임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니었다. 2009시즌에는 1.63이었다.
박현준은 이재곤에게는 없는 150km에 가까운 강속구가 있지만 싱커를 던지지 못한다. 싱커를 대신한 포크볼로 땅볼을 유도하지만 제구가 안정된 편은 아니다. 일반적 정통파 투수처럼 직구-슬라이더가 주무기다.
다른 스타일은 상대 타자 유형별 성적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잠수함 투수는 좌타자에게 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좌타자의 경우 정통 우완 투수에 비해 공을 더 볼 수 있기 때문.
이재곤은 일반적인 생각처럼 우타자에 비해 좌타자에게 유독 약했다. 우타자에게는 피안타율 .268 WHIP 1.17 삼진/볼넷 비율 27/12로 모든 수치가 뛰어났지만 좌타자에게는 피안타율 .281 WHIP 1.40 삼진/볼넷 비율 17/19를 기록했다. 상대한 타자는 우타자가 더 많지만 홈런도 우타자에게는 3개만 맞은데 비해 좌타자에게는 8개나 내줬다.
박현준은 달랐다. 우타자와 좌타자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WHIP은 우타자 1.62, 좌타자 1.39로 우타자에게 더 많은 출루를 허용했다. 삼진/볼넷도 우타자 30/20, 좌타자 16/7로 좌타자가 더 좋은 비율이었다. 힘으로 타자를 상대하다보니 좌타자를 상대로한 잠수함 특유의 약점이 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이재곤-박현준의 올시즌 첫 번째 과제는 '선발 사수'
이렇듯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은 두 선수지만 올시즌 그들의 첫 번째 과제는 '선발 사수'로 같은 곳을 향한다. 지난해 가능성을 보인 그들이지만 올시즌에도 선발로 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재곤이 속한 롯데는 올시즌 '선발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기존의 송승준, 장원준, 라이언 사도스키가 건재하다. 새 외국인 투수도 타자가 아닌 브라이언 코리로 언제든 선발로 뛸 수 있는 선수다. 여기에 지난해 넥센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고원준까지 합류한 상황. 지난 시즌 자신과 함께 깜짝 활약을 선보인 김수완 역시 얕볼 수 없는 상대다.
송승준, 장원준, 사도스키까지 3자리가 사실상 붙박이임을 감안할 때 남은 1~2자리를 놓고 다른 선수들과 경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현준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팀에 비해 마운드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LG이지만 선발 경쟁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에이스 봉중근을 필두로 외국인 투수(레다메스 리즈, 벤자민 주키치)가 전부 선발 요원으로 채워졌다. 박현준 역시 이재곤과 마찬가지로 4, 5선발 자리를 놓고 박명환, 김광삼, 심수창, 최성민 등과 자리를 다퉈야 한다.
희소한 존재가 된 잠수함 선발투수. 지난해 잠수함 선발 부활을 이끈 이재곤과 박현준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맥을 이을 수 있을지 관심이 간다.
[사진=LG 박현준(왼쪽,두번째 사진 아래)과 롯데 이재곤]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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