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고 이수현 10주기 추모식 도쿄에서 개최, 국회의원 등 300여명 참석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8분 경. 당시 유학 중이던 이수현 씨는 JR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은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있던 양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며 귀감으로 자리잡았다.
그로부터 10년. 고 이수현 씨의 10주기 추모행사가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区) '주부회관 플라자F' 에서 개최됐다. 매년 개최된 공식 추모행사는 부모님이 고령으로 매년 일본을 오가기 어렵다는 점 등이 고려돼 올해로 마지막이 될 예정이다.
추모식 전 개최된 기자회견에는 일본 언론들도 다수 참석해 이수현 씨의 마지막 추모행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부친 이성대(71) 씨와 모친 신윤찬(61) 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담담히 아들을 추억했다. 이성대 씨는 "아들은 유학을 마치고 한일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며 "비록 수현이는 떠났지만 그 유지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식에는 2001년 당시 일본 외무상을 지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의원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의원, 권철현 주일대사와 이 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 감독과 주연배우 이태성, 아시아 16개국에서 이수현 장학금을 받은 485명 중 일부 등 총 300여명의 인원이 참석해 회장을 가득 메웠다.
한류스타 배용준을 비롯해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친구이자 언론인인 하시모토 아키라(橋本明)씨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 나가야스 가쓰노리(永易克典) 미쓰비시UFJ은행 회장 등 10여명은 화환을 보내 추모 마음을 전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기쿠타 마키코(菊田眞紀子) 외무성 정무관의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며 "전도유망한 젊은이의 희생이 가슴 아프다"라고 전했다. 또 "한일 양국의 우호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던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노력하겠다"며 "숭고한 희생에 감사의 예를 표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권철현 주일대사의 대독을 통해 "인명을 구하고자 하는 고인의 용기 앞에 국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고인의 뜻을 생각해 양국의 우호와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추모사를 전했다.
부친 이성대 씨가 아들을 떠나보낸 후 10년을 회상하는 강연회는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성대 씨는 "수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정의감이 강했고, 리더십이 있는 아이였다.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관철시킬 줄 아는 아이였다"라고 추억했다.
또 "10년 전 비보를 들었을때는 거짓말이라고 믿었다. 신주쿠 경찰서에 안치된 얼굴을 봐도 수현이 얼굴 같지 않았다"라며 절절했던 당시 상황을 털어놓을 때는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참석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성대 씨는 "이렇게 자신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하늘에 있는 아들도 기뻐할 것이다"며 "아들을 비록 가슴에 묻었지만,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수현이를 잊지 않고 뜻을 새기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말미에 "오늘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며 일본어로 인사를 마치자 추모객석에서 힘찬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이날 오전 10시 이씨의 모교인 부산 내성고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고, 25일에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이수현 의인 문화재단 설립위원회 주최로 1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겨울연가' 등의 한류 열풍이 채 불기도 전, 고 이수현 씨의 용기있는 행동은 한국을 '가깝지만 잘 모르는 나라'에 불과했던 일본 국민들의 마음에 뜨거운 불씨를 남겼다. 비록 공식적인 추모행사는 끝나도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의 유지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연승 기자
김소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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