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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 '나는 가수다'는 청중평가단 500인의 표를 무효로 만든 것은 물론 서바이벌이란 규칙을 굳게 믿고 있던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깼다.
비난은 제작진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셌고, 일부에선 프로그램 폐지까지 요구했다. 결국 MBC는 '나는 가수다'의 수장 김영희 PD를 하차시켰으며 논란의 중심 김건모도 자진 하차했다. 지나친 결정 같지만 시청자들이 '나는 가수다'에 퍼부었던 비난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수위의 결정은 불가피 했다.
시청자들은 김건모, 이소라, 김제동, 김영희 PD 나아가 '나는 가수다'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고 철저히 그들을 외면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7일 방송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가수다'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왜 시청자들은 '나는 가수다'에게 실망하고도 다시 마음을 돌린 것일까?
사실 시청자들에게 김건모,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윤도현, 이소라, 정엽 같은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본 기억은 많지 않다. 1990년대만 해도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과 김건모, 신승훈 등의 가수들, 또 태진아, 김국환, 설운도 등 트로트 가수들까지 공존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며 한국 음악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고, 방송은 아이돌의 독무대였다. 방송에서 사라진 가수들의 음악은 라디오 또는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 음악에서나 들려올 뿐이었다.
따라서 '나는 가수다'를 본 시청자들이 받은 감동과 충격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언젠가부터 시청자들은 반복되는 멜로디, 화려한 의상과 조명,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사로잡혀 노래를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데 더 익숙해져 있다. 이런 와중에 김범수가 부른 이소라의 '제발', 김건모가 부른 정엽의 '유 아 마이 레이디(You are my lady)' 등은 닫혀 있던 귀를 다시 열리게 해줬다. 시청자들이 '나는 가수다' 폐지에 적극 반대했던 까닭이다.
'나는 가수다'는 현재로선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 가요계의 새로운 무대다.
'뮤직뱅크'나 '인기가요' 같은 가요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아닌 가수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는 팬덤 문화에 기인하는데,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 선정은 팬들의 투표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고 10대가 대다수인 아이돌의 팬들이 투표에 더욱 적극적이다. 따라서 차트 상위권에는 이소라나 박정현 같은 가수 대신 아이돌 가수가 대세를 이루고 프로그램 섭외도 아이돌 중심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심야 음악프로그램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한계점이 분명하다. 프로그램에 누가 출연할지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제작진의 몫이라 시청자들이 원하는 가수와 출연하는 가수에 차이가 있다. 차트 중심의 가요프로그램에선 다수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가수가 차트 상위권이라 대부분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만 심야 음악프로그램은 매회 제작진의 의지가 가장 많이 반영된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에게 청중평가단이 투표를 하고 시청자가 지지를 보내는 건 '유희열의 스케치북'과는 다르게 내가 원하는 가수를 다음 주에 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나마 여러 장르의 가수들을 조명하던 심야 음악프로그램도 어느 순간 배우나 아이돌 가수의 출연 횟수가 잦아지더니 '김정은의 초콜릿'처럼 폐지되는 경우도 있어 가수들의 방송 무대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이 '나는 가수다'가 가수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소중한 이유다. 서바이벌이라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소재이지만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의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마저 없어진다면 시청자들이 박정현, 김범수, 이소라 같은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방송에서 볼 방법이 없다.
이번 '나는 가수다' 사태를 겪으면서 대중은 노래가 주는 감동을 깨달았다. 때문에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난에도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정엽,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백지영, 박정현, 김범수(맨위부터). 사진 = MBC 화면 캡쳐]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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