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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선애 기자]최근 취재를 다니면서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으로 기자를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언제나 당당한 모습으로 주목받는 배우 박해미다. 지난 3월 30일 SBS 라디오 봄개편에 대해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박해미는 현재 출연하고 있는 KBS 1TV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를 정면으로 비판해 기자의 귀를 의심케 했다.
당시 박해미는 “’웃어라 동해야’의 경박스러운 그 역할, 누가 그걸 하겠나. 나니까 그나마 잘 잡아준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섭섭하고 짜증나고 슬프기도 하다. 드라마 작가분들의 펜대에 놀림을 당하다 보니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해야만 한다. 드라마는 그게 매일매일이 달라지고 불만족스러워도 해야한다”고 다소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물론 이런 박해미의 말은 혼자서 제약없이 모든 걸 자유자재로 이끌 수 있는 라디오의 매력을 설명하기 위한 극단적인 두 대상을 비교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평소 ‘웃어라 동해야’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KBS 1TV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는 시청률 40%를 돌파하는 인기드라마지만 막장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박해미가 맡은 캐릭터는 딸을 위해 악행을 일삼아 시청자들로부터 지적을 많이 당하는 캐릭터로, 박해미는 이날 그와 관련한 울분을 이렇게나마 토해낸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에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출연작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전한 배우는 또 있다. 지난해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출연했던 배우 이민우다. 작품성과 필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에 출연한 이민우는 드라마 방영 중간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전작 MBC 일일극 ‘살맛납니다’를 비판했다.
당시 이민우는 “’살맛납니다’ 배우와 스태프 분들껜 죄송스런 말일 수 있는데, ‘살맛납니다’도 솔직히 막장드라마라 불리는 작품이었다”라며 “굉장히 괴로웠다. 감독님과의 친분과 악역이란 메리트 때문에 출연했는데 먹먹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민우가 이 발언을 할 땐 ‘살맛납니다’에서 이민우만 하차하고, 드라마는 채 끝나지 않은 때였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비판하는 배우는 매우 드물다. 배우들은 시청률 사냥에 실패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은 드라마에 출연했다면 ‘운이 나빠 시청률은 조금 낮았지만, 작품은 정말 훌륭했다’는 것으로 자부심이 넘친다. 해당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 만족해하고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그 작품이 새겨진다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
반면 막장드라마라 비난받아도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라면 ‘시청자가 사랑해주는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높은 시청률이 막장이든 연기든 어떤 논란도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면죄부인 셈이다.
앞선 두 배우의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기 꽤 한다는,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연기했다는 배우들이 어째서, 드라마가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을 때 이런 소신발언을 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며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20년 이상 연기를 해오며 연기에 남다른 자부심과 자존심이 넘치는 그들이기에, '막장'이라 손가락질 받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연기에 대한 소신 사이의 괴리감에서 오는 괴로움이 컸을 것이란 지적이다.
배우는 천성적으로 작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직업이다. 우스갯소리로 작가의 눈 밖에 난 배우의 캐릭터는 얼마든지 비명횡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의 힘이 작가에게 있기 때문에 배우가 작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배우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문제점이 제기된 것을 봤을 때 그만큼 내부에서도 막장 드라마나 작가의 무조건적인 권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심 센 작가에 대항의 칼을 뽑아 든 더 자존심 센 배우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 또 한 명의 배우, MBC ‘욕망의 불꽃’에 출연한 조민기가 정하연 작가와 ‘전쟁’을 벌일 태세를 갖추다 먼저 사과하는 것으로 갈등을 일단락시킨 일이 있다.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질 뻔 했던 일이 조민기의 '급사과'로 끝났지만, 이 역시 쌓이고 쌓인 내부적 불만이 배우의 입을 통해 결국 터져나온 것으로 씁쓸함을 안긴다.
[왼쪽부터 이민우-박해미-조민기. 사진=마이데일리DB, SBS]
강선애 기자 sak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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