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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훈 기자의 인디스But구디스] 데이브레이크의 음악은 서서히 빛이 찾아들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이라는 팀 이름을 닮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모양새는 참으로 다른 새벽의 다양한 풍경처럼 팝과 록, 재즈, 라틴을 넘나드는 폭넓은 장르 융합으로 2장의 정규 앨범만으로도 홍대 신의 실력파 뮤지션으로 각인되기에 충분할 역량을 뽐냈다. 정규 3집 앨범을 앞두고 디지털싱글로 쉼표 하나를 찍은 데이브레이크를 서둘러 만난 것도 이들의 세번째 찾아올 새벽에 대한 기대감때문이었다.
정규 3집에 앞서 디지털 싱글을 내놓았다.
이원석(이하 이) 정규 음반은 올 가을에 생각하고 있다. 우리 음악 아시는 분들이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싱글로 가볍게 실험해 보는 기회였다.
데이브레이크의 뿌리를 쫓는다면 이원석·김선일의 브런치에 맞닿아있다.
이 선일이하고 저를 포함해 5명이 멤버였는데 우리 둘 외에 3명의 멤버가 모두 음악을 그만둔 상황이었다. 2006년 새롭게 팀을 구성하는데 브런치가 데이브레이크의 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데이브레이크 활동 초기에는 데이브레이크가 아닌 브런치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도 했다. 브런치와 음악 색깔도 달랐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팀 이름을 바꾸게 됐다.
김장원과 정유종은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김장원(이하 장원) 선일이형과 세션을 몇 번 같이 했는데 정말 내가 만나 본 베이시스트 중 최고였다. 원석이형 보컬도 너무 잘하고. 암암리에 브런치가 깨질 것 같아서 원석이형에게 건반 레슨을 하면서 친목을 도모했다. 유종이도 들어왔는데 기타를 너무 잘 치는 거다. 이들과 함께라면 내가 숟가락만 얹고도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난해까지 5년째 힘들었다(웃음). 이제 좀 살만해 졌지만 노래방 가면 꼭 1절 이상 불러달라.
데이브레이크라는 팀명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
이 멜론루키프로젝트라고 매달 1팀에 제작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마감 전날에야 알게 돼 참가하려면 팀 이름을 빨리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장원이가 알파벳 소문자 'db'가 헤드폰 모양으로 재미있어서 'db'로 짓기로 하고 약자를 열심히 찾았다. 대박, 데이터베이스, 데시벨 여러개 나왔는데 유종이가 '데이브레이크'를 꺼냈다. 쉽지 않은 단어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새벽'이 주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좋아 택했다.
2007년 내놓았던 1집 음반도 정말 빼어났는데 공연 무대에서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정유종(이하 정) 소속사 문제때문이었다. 지금의 해피로봇레코드는 매력적인 무대에 서게 지원을 해 주는데 전 소속사는 우리를 아이돌처럼 매니지먼트하려 했다. 1집은 진짜 열정적으로 열심히 연습했고 멤버들이 당구도 100씩 늘었다. 그만큼 붙어다녔단 이야기다.
장원 한마디로 소속사가 무능했었다. 방송만 출연시키려 했는데 듣보잡인 우리를 누가 방송에 출연시키겠나. 공연계에서는 또 무지하니까 제약이 많았다. 4명 다 그만두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먼저 이야기하면 자기때문에 팀이 깨진 것 같을까봐 못했을뿐이다. 공연도 많이 안하고 개점휴업 상태라 활동도 못하고 있었는데 원석이 형이 헬로루키에 나가자고 해서 몸도 근질근질한 김에 참여하게 된 거다.
이 브런치에 이어 2연타로 엎어지니까 상실감이 정말 컸다. 우리는 어떤 음악적 지향점을 정해놓은 게 아니고 단지 좋은 음악 하자고 모인 거라 실망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결국 헬로루키로 선정되면서 다시 밴드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 2009년 9월 헬로루키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당시 홍대 밴드 이미지랑 우리가 많이 달라서 10월에 다시 지원하라는 작가님의 전화에도 '우리가 설 자리는 아닌 것 같다'고 고사했었다. 결국 10월에 다시 지원하게 됐는데 당시 함께 뽑힌 팀이 노 리플라이나 좋아서 하는 밴드 등 쓰레기같은 밴드들이었다(웃음). 연말 결산에 오른 7팀에도 뽑혔는데 비록 상은 못탔지만 '좋다' 'Urban life style'이 인정을 받으면서 가능성을 보게 됐다.
지난해 2집의 성공으로 이제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아졌을 것 같다.
장원 홍대, 상수 이 동네서만 알아본다. 이대만 가도 모른다(웃음).
이 '들었다 놨다' 덕에 인지도가 높아진 것 같긴 하다. 공연장에서도 '쟤네 누구야?' 이러다가 '들었다 놨다' 전주만 나오면 관객들이 모여든다.
정 공연을 재미있게 하는 가수라는 인식이 강해 오히려 음반이 안 나가는 것 같다. 쟤네들은 음반이 아닌 라이브로 봐야 돼 뭐 이런 인식?
새 디지털 싱글의 타이틀이 '미스터 롤링 스톤'이다.
이 선일이가 신발 안의 돌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했는데 처음에는 유심히 듣진 않았다. 곡을 먼저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과정에서 그 '롤링 스톤' 이야기가 생각났고 신발 안의 돌을 의인화시켜 가사를 쓰게 됐다. 밴드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이제야 밴드같다고 할까. 기존 긍정의 에너지와 밝고 신나는 경쾌함 등 들려드렸던 사운드나 편곡 스타일에서 반박자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컬도 훨씬 힘을 빼고 불렀다. 절제된 느낌? 원래 프리프로덕션을 완벽하게 해서 녹음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그런 약속이 없어서 좀 더 자유롭게 연주한 거 같다. 물론 녹음시간은 길어졌다.
정 편성은 전보다 오히려 적은데 사운드가 비는 것이 아니고 예전에는 하나하나 달려갔다면 정갈해졌다고 할까.
'들었다 놨다'도 그렇고 경험담을 담은듯한 가사들은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 건가.
이 한 사람이 테마를 가져오면 모여서 발전해 나가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더더욱 팀 플레이로 정리를 했다.
장원 '들었다 놨다'는 내 경험담이다. 내가 들었다 놨다 한 게 아니고 당했다(웃음). 앞으로 나올 디지털 싱글도 '들었다 놨다'와 같은 여자 이야기다. 한 남자가 결혼 직전의 전 여자친구를 만났다. 결혼식 전 마지막으로 해변에서 춤을 추면서 그녀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들었다 놨다'도 알고 보면 슬픈 노래다.
김선일(이하 선일) 어쩐지 녹음실에서 계속 울더라.
음악의 첫 걸음이 된 가장 먼저 돈을 주고 구입한 음반은 무엇인가.
이 이문세 4집이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수록된 명반이다.
장원 어, 나도 이문세 4집인데 우리 같은 연배인가(웃음). 그 날 '어젯밤 이야기'가 타이틀이었던 소방차 1집은 테이프로 사고 이문세 4집은 LP로 같이 샀다. 이문세 4집을 더 오래 들을 것 같아서. 사촌형이 이문세 4집을 들려줘 너무 좋았는데 복사를 안 해 줘서 더럽다고 구입했다.
선일 초등학교 2학년 때 웸과 유리스믹스 테이프 2개를 샀다.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듣게 됐다. 이문세 4집도 샀는데 당시 그 음반이 가격을 올려 받아서 이문세 4집을 소장한 것 자체로 자부심이 컸었다.
정 윤상 1집이다. 그 때 산 음반들은 나중에 들으면 왜 샀지 하는 생각이 큰데 이 음반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명반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이 퀸과 안전지대다. 보컬에 정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색깔이 뚜렷하고 정말 아시아와 영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들이라고 생각한다.
장원 익스트림과 미스터빅이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밴드였다. 21세 때까지 기타를 쳤는데 두 팀에 되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일 장필순씨 음반은 다 산 것 같다. 당시 동아기획 음반들 대부분. 해외로는 팻 매스니일 거다.
정 익스트림인 것 같고 존 메이어도 있다. DVD를 진짜 안 사는데 메이어는 쇼 프로그램 나온 것 까지 보게 된다.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결정적 순간은 언제인가.
이 대학교 때 '소나기'라는 밴드로 대학가요제에 나갔을 때다. 입상을 걸고 했는데 상 못 받았으면 음악을 안 했을 거다.
장원 난 가요제 5번 떨어졌다. 내가 노래하니까 떨어진 것 같다(웃음).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갔는데 친구가 익스트림의 'More than words'를 치는 거다. 나도 꼭 쳐 봐야지 생각해서 통기타를 사러갔다가 일렉기타가 너무 멋있어서 그걸로 샀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거다. 친구한테 '왜 일렉기타로는 익스트림 소리가 안 나지'라고 물으니까 친구가 '그런 건 이런 걸 쳐야 되는거야'라면서 메탈리카나 잉베이 맘스틴을 들려줬다. 그 때 영혼이 빠져나가 기타에 올인하게 됐다. 결국 고2 때부터 밴드를 하게 됐다.
선일 고등학교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성가대에서 노래 앙상블의 재미를 알게 됐다. '베이스 한 번 쳐 봐라'는 제의에 고교 2학년 때부터 베이스를 치게 됐고 군악대에 들어가면서 업으로 삼게 된 것 같다.
정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바이올린을 조금 했었는데 통기타를 배우려고 했더니 친구가 '아니다'라면서 연습실을 데려갔다.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험상궂은 형들이 많았다. 그런데 거부감이 안 들고 일렉기타가 자극적이고 좋더라. 그 때부터 레슨을 받는데 다른 애들에 비해 빨리 늘어 재능이 있구나 생각했고 1년만에 선생님보다 잘 치게 됐다. 타고난 재능이라기 보다는 손톱만큼 이해가 빠른 것 같고 그만큼 열심히 한 것 같다.
올 가을에 나올 3집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이 3집은 밴드적인 느낌, 변화된 느낌을 실험하는 시작이 될 거다. 좀 더 짙은색깔을 기대하고 있다. 1집부터 진한 색깔로 발표하는 뮤지션이 있는가 하면 비틀즈나 퀸 등 팝음악의 클래식들은 음반을 발표하면서 발전 과정을 보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여성 취향적이고 가볍다가 점점 발전되고 깊어지는 느낌, 우리도 그러고 싶다.
[사진제공 = 해피로봇레코드]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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