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종합
[김상하의 일본엿보기] 평범한 남녀미팅에 日영화감독이 참석한 이유
한국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친구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일반인’의 범주에 들어있다. 한국에서 연예인이나 영화감독과 친구가 되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일반인이던 시절부터 친구였거나, 아니면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나만의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에서는 이게 좀 다른 것 같다.
얼마전 결혼을 한 재일교포 친구가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해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단체 미팅을 주선하기로 했다. 명목상으로는 IT업계에서 일하는 한국인 독신 남성과 재일교포 여성을 포함한 일본 여성들의 모임이었다. 여기에 IT 관련직으로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한국 남성 5명과 일본 남성 1명, 재일교포 남성 1명, 일본 여성 4명과 한국 여성 1명, 그리고 재일교포 여성 2명 등 모두 14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재일교포 친구의 학교 후배인 재일교포 여성이 데려온 친구가 부산영화제에도 작품이 상영되기도 한 제법 유명한 여성 영화감독이었다. 이 영화감독과 영화 취향이 맞았던 나는 3시간 동안을 ‘소노 시온(園子温)’ 감독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모임이 끝난 뒤 연락처를 교환하고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나의 일본인 친구들 중에는 유난히 영화・연극 등에 관련되어 있는 친구들이 많다. 물론 그 계기는 절친한 일본인 중에 CF감독을 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누구나 알만한 CF를 여러편 감독한 친구인데, 이 친구가 과거 활동하던 극단에 소속되었던 친구들을 소개받아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CF 감독을 하는 친구와는 전혀 관계 없는 곳에서 친해진 사람들이 더 많다. 대부분 자주 가는 바(bar)나 클럽 등에서 친해지거나, 공연 등을 찾아서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경우 연극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과 함께 배우들이 단체로 술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는 문화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친해질 수 있다. 그리고 대게 외국인에는 관심을 많이 갖기 때문에 쉽게 화제를 이끌어서 연락처를 주고받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술자리나 미팅 등에 초대하면 별 거리낌 없이 참석해주는 경우도 많다.
물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빅스타들은 이런식으로 친해질 수 없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빅스타’가 아닌 그냥 덜 유명한 ‘연예인’, 혹은 이름은 알려졌지만 거물급이 아닌 영화배우나 감독, 음반을 계속 내고 있지만 빅스타가 못 된 가수 같은 경우에는 일상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반인들끼리 단체미팅 하는데 아무리 거물이 아니라고는 해도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가 따라오는 경우는 조금 상상하기 힘들지만, 일본에서는 그렇게 어색한 상황은 아니다.
여기에는 2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나는 일본이 사생활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사회라는 점이다.
최근 한국에서 서태지와 이지아의 결혼과 이혼 문제로 떠들석한데, 아마 일본에서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면 한국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정도급 대스타의 스캔들이라면 일본도 집중보도를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확인된 팩트를 기반으로 한 보도가 우선된다. 그리고 하나의 미디어에서 같은 주제로 기사를 수십개씩 쏟아내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의 관계는 범죄가 아닌 단순한 사생활 문제이기 때문에 뭐라고 커멘트를 넣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배우나 감독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도 사생활에서는 배우나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생활에 대한 간섭이 없고, 그런 자리에서 영화감독을 만났다고 해서 그를 이용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도 없는게 일본이다. 사석에서 만났으니 즐겁게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맞으면 연락처 교환하고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날 하루 만나고 끝인 것이다. 그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한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의 연예・문화 산업 종사자들의 생활이 굉장히 빈약한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구들과 홈파티를 하면 자주 참석하는 K군 같은 경우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에서 조연급으로 출연한 나름 경력 있는 배우지만 이 친구는 12년째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홀매니저를 하고 있다. 본업이 영화배우이지만 배우업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CF 감독을 하는 친구 H도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차세대 CF감독이라고 할 만한데, 그럼에도 이 친구는 7평 남짓한 원룸에서 생활한다.
자주가는 바에서 친해진 뮤지컬 배우인 O양은 일본 최고의 명문 사립대를 나와서 뮤지컬 배우를 하는데 돈을 못 벌기 때문에 30대 중반인 지금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친구 Y양도 일본 최고의 명문 사립대를 나와서 왕성하게 연극,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몇 년째 은행의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가난하고, 30대에 모두 독신이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 크게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일본은 연예인이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으면 월급을 받기 때문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건 사실과 크게 다르다. 분명 연예인도 월급제이지만 어디까지나 실적제이고, 기본급은 한달에 2~5만엔 정도에 불구하다. 물론 잘 나가는 연예인이 아니면 경비정산은 안해주기 때문에 그 월급의 대부분이 차비와 식비로 쓰인다. 연예인들 대부분이 지방에서 상경해 생활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고, 제법 이름이 알려지고 TV에 어렵지 않게 얼굴을 볼 수 있게 되더라도 아르바이트 없이는 생활이 안 된다.
일본에서는 아직 거물이 되지 못한 연예인이나 영화감독 등을 “食えない(쿠에나이, 밥을 먹지 못하는)”라는 표현을 붙여서 부른다. 아직 자기 본업만 가지고는 밥을 먹기 힘든 레벨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도 아직 밥을 못 먹는 레벨의 연예인들과는 쉽게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글 | 김상하(프리 라이터)
(김상하 씨는 현재 일본 도쿄에 거주중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일본서브컬쳐 정보를 발신하는 파워블로거입니다)
김상하 씨 블로그: http://blog.daum.net/kori2sal/6235775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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