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1999년, 우연히 친척 누나가 던져 준 프로디지(Prodigy) 앨범 한 장. 클래식과 가요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던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음악이 존재하지? 나만 몰랐단 말이야?' 그 충격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때마침 TV에서 빨간 머리를 흔들며 "울트라맨이야!"를 외치던 서태지를 본 뒤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와, 이건 정말 새로운 세상이야. 너무 멋진걸! 죽기 전까지 이런 음악을 다 들어보지 못한다면 눈조차 제대로 감을 수 없을 것 같아. 더 멋진 음악을 듣고 싶어. 아니 내가 한번 그런 음악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이 가득하던 사춘기 시절. 어머니께서는 제 앞에서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House of the rising sun)'을 말 없이 기타로 연주해주셨고, 저는 바로 그날 오후 클래식 기타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음악에 첫 발을 내딛던 이 날부터 제 인생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의 소리를 글로 표현하면 아마 아기의 작은 심장 소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이후 전 매일 같이 음악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모코어 밴드부터 어쿠스틱 밴드까지 다양한 음악을 배웠고 또 수많은 공연을 뛰어다녔습니다. 무 관객 공연부터 수백 명 앞의 대공연장 공연까지 모든 것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려 보면 관객 한 명 없던 공연이 어쩌면 가장 신이 났던 것 같습니다. 관객의 환호가 없더라도 음악을 연주하는 자체만으로도 제 심장은 계속 뛰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엘 카스타(El Casta)라는 일렉트로닉 프로젝트에서 DJ 및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습니다. 음악을 듣고 만드는 일은 매번 새로운 떨림을 전해 줍니다. 그런 떨림을 잊을 수 없어 계속 음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전 아직 짧은 음악 인생이지만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이 길을 걷는 동안 음악으로 만나 음악으로 통한 친구들입니다.
'우리 록스타가 돼서 영국과 미국을 정복하자. 그래, 내일은 반드시 글래스톤베리에 서 있을 거야. 아니면 가까운 후지 산에라도…
'라며 함께 술에 취해가던 친구들. 비가 온몸을 적셔도 악기는 젖지 않게 몸에 감싸 뛰어가던 친구들.
하지만 그 멋진 친구들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져 가는 게 보였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삼켜 버릴 것 같던 그 눈빛들과 에너지가 어느덧 빛이 바래가는 걸 느꼈습니다.
세상에 치이고, 돈에 울고,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음악이 밟히는 모습을 보며 몇 년을 보낸 친구들은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말없이 친구의 넋두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던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인디는 그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내 생각 그대로를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야"
맞는 말, 멋진 말입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음악. 우리는 젊기에 아직 영어 점수와 학점 그리고 실무 경험 따위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나도 어리기 때문에 아직은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를 꿈꿔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친구들이 꿈을 품게 되던 순간의 심장 소리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진 = 이상협, 엘 카스타, 엘 카스타의 '더 갤럭시 턴테이블' 재킷(맨 위부터)]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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