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소울 가수 바비 헤브가 1965년 작사·작곡, 1986년 보니 엠이 디스코풍으로 편곡하여 다시 부른 'Sunny'. 영화 '써니'의 대표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영화 '써니'가 '우리들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담고 있듯이, 이 곡의 가사를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그 느낌이 영화가 주는 찬란한 느낌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영화 쪽과의 오디션이 잡힐 거란 소식을 들었을 때 즈음일 것이다. 이 가사를 처음 읽었을 때가. 그 땐 미처 몰랐다. 이 곡의 가사가 '새로운 시작' 이라는 의미로 이렇게나 가깝게 나에게 와 닿을 줄은.
▷2011년의 시작. '써니'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고, 어떤 작품을 할 것이고, 어떤 일을 이뤄낼 거라는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편은 아니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저 모든 것을 허투루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주어지는 일에 가장 큰 의미를 두어 최선을 다해서 현재에 충실한다.
영화 '써니'도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철저히 계획했던 일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나름의 몫을 하려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 일이었다. 참 고민이 많았다. 웃길 수 있을까, 욕을 잘 할 수 있을까, 단 3씬이 나오는데 그 짧은 시간에 호응을 이끌 수 있을까, 호응도 못 얻고 혼자 떠들다가 제 몫도 못하고 묻혀버리면 어쩌나....., 등등. 거기에, 너무 불량스러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여자로서의 고민까지.
모든 고민은 처음 시도하는 불량·코믹 캐릭터에 대한 부담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이미 출연이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나 자신을 100% 배제시켜 캐릭터를 소화하겠다는 확신은 둘째치고 최소한 어색해 보이는 불상사는 일으키지 말자는 책임감이 내 온 신경을 덮었다. 지금은 우스갯 소리로 말하기도 하지만 매니저 오빠와 욕을 연습하기도 하고, 몇 차례 반복됐던 리딩과 연습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촬영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스친다.
지금 내가 앞서 말한 상태로는 현장에서 절대로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분량 덕(?)에 촬영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돌덩이 같이 굳어있던 나를 바꾼 건 감독님이셨다. (강형철 감독님이 모든 출연 배우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리더로 정평이 나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 경우엔 '김예원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자는 감독님의 말이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됐고, 나중에는 감독님 왈 "안 그럴 것 같은 애가 왜 그러니"라고 하며 웃기도 하셨다. 칭찬으로 들려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아마 다른 배우들도 비슷한 부분을 느꼈을 거라고 짐작한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 내는 감독님의 진심이 쌓이고 쌓여, 이번 결과물에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보통에 비해 캐릭터가 많았던 영화지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역할들이 모두 다 영화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제는 "진짜 학창시절에 놀아본 것 아니냐, 원래 웃기냐"는 질문에 오해받기 싫어 손사레를 치면서도 마음 한 켠에 뿌듯함을 느끼고, 최소한의 몫에 대한 안도의 숨을 쉰다.
영화 '써니'는 나의 2011년을 새롭게 열어 주었고, 그것이 곧 나를 오롯이 빛내주어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란다. 나는 지금 새로운 시작을 부르고 있다. '써니'를 부르고 있다.
▷ '내 아내 네이트 리의 첫사랑'에서 '로맨스 타운'까지.
2010년 가을. 아직 캐스팅 결정도 안 된 시나리오가 책상위에 놓여 있는데 왜 그리 사랑스러워 보였을까. '내 아내 네이트 리의 첫사랑' 이라고 써져 있는 표지에, 어찌 보면 그냥 스쳐지나 갔을 수도 있었을 한낱 종이 뭉텅이에 불과한 시나리오에 왜 그리 마음이 갔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네이트 리를 사랑했다. 맨 처음 작품 미팅 때, 베트남 처녀 역할인데 예쁘지 않게 나와도 괜찮겠냐는 감독님의 물음에 오히려 왜 그런 걸 물으실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저 '네이트 리'라는 역할의 사랑스러움이 반갑고 고맙고 행복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네이트 리에 대한 애정은 짧은 시간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관객이나 시청자가 없으면 배우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지만, 흥행성과 수익논리에 막혀 편성자체가 쉽지 않은 단막극의 주인공으로 보름 남짓 사는 동안 어느 누구 보다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게 방송 편성은 중요치 않았다. 다만 나 말고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이가 갇혀 있다는 느낌이어서 지금도 가끔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백하건대, 그 전에 나는 '내가 연기하는 역할에 대한 애정'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이 작품은 그냥 노력하는 것과 애정을 갖고 노력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게 해줬고, 역할을 진심으로 품었을 때 어떤 쩌릿함이 오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트 리는 내게 또 다른 선물을 준다. KBS2 수목 드라마 '로맨스 타운'의 '뚜 자르 린'이라는 캐릭터가 그것이었다. 베트남에서 온 식모 역할을 찾는 도중 감독님은 단막극에 대해서 알게 되셨고, 오직 그 이유로 나를 부르신 후 그 자리에서 확답을 주셨다. 평범치 않은 연기를 소화해내야 하는 캐릭터인 탓에 감독님께 확신을 드려야 했는데, 네이트 리의 대사를 직접 보여드린 것이 결정적인 캐스팅의 이유인 듯 하다.
뚜 자르 린. 베트남 처녀라는 것은 공통점이었지만 그 외 모든 것이 '네이트 리'와 달랐다. 다른 한국 식모들에 둘러싸여 자칫하면 너무 동떨어진 캐릭터가 되어버릴 수 있는 '뚜'가 과연 작품 속에 자연스레 녹아날 수 있을까. 게다가 감독님은 시청자들이 처음 이 캐릭터를 접했을 때 "저 사람이 진짜 베트남 사람인가" 궁금증을 유발시킬 정도의 리얼리티를 생각하고 계셨고, 그 정도의 사실감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다. 고민을 하면서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은 정말로 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날아와 일하며 돈을 벌고 있는 그들에게도 최대한 거짓된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고, 다행히 평소 공상을 즐기지 않은 타입이어서 '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더욱 실제적인 자료수집에 치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하고 있는 지금도 내가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어서 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과잉한 표현에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진 않을지 조마조마 하다. 혹시 누군가 그런 것을 찾는다면 꼭 말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오는 반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트위터나 미니홈피인데, 다행히도 보시는 분들이 아직까지 잘 믿어주시고 놀라워 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써니'에서 본 인물과 '로맨스 타운'에서 보고 있는 인물이 동일인물이냐 하는 질문을 듣는 것이 요즘 나의 비타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뜨진 않아도 뿌듯해 하며 꾸준히 노력하고 싶다. 나 자신을 배제 시키고 온전히 작품안의 캐릭터로 연기하는 연기자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인 나에게 더없는 응원이고 칭찬이다.
아직 1/3도 오지 못했다. 마지막 20부 까지 14부가 남아있다. 폭넓은 연령층에 높은 공감을 선사할 수 있고, 전해주는 메세지도 놓치지 않을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나에겐 이미 너무 큰 존재로 자리 잡은 '뚜'가 지금처럼 계속 사랑받았으면 좋겠고, 드라마 안에서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 김예원.
가끔 나를 되돌아 볼 때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아, 지금 나 20대지" 하면서. 강요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좋은 때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즐겨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름 여유를 갖고 생각해보자 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새 결국 청춘을 다 바쳐 살고 싶다는 생각에 와있다.
나이가 들면 또 그 나름대로의 청춘이 있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신을 번뜩 차리게 된다. 그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지금의 나만 해도 불과 몇 년 전인 학창시절에 놓치고 지나왔던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너무나 큰 아쉬움을 갖고 있다.
지금도 이런데, 그럼 서른 즈음에는 지금의 내가 얼마나 보고 싶고 아쉬울까.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내 나이에 맞는 역할로 더 많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어쨌든 어떤 영화든, 어떤 드라마든, 또 어떤 공연이든, 어떤 음악이든 열정 가득히 해내고 싶다. 훗날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일부러 무언가를 계획하기는 싫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여전히 즐거이 생각하고, 여전히 가장 나다운 모습이길 바란다.
김예원은 2008년 영화 '가루지기'로 데뷔를 했다. 그 후 뮤지컬드라마 '비처럼 음악처럼'에 출연, KBS2 '전설의 고향 혈귀', MBC '드라마넷 별순검3', 단막극 '내 아내 네이트리의 첫사랑'등에 출연했다. 또한 영화 '1724 기방난동사건 - 새', KBS2 '공부의신 - 그래도 좋은 사람', SBS '신기생뎐 - 연정가', tvN '매니 - 이런 바보'의 OST에 참여해 가수 못지않은 노래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영화 '써니 - 소녀시대 리더'와 KBS2 '로맨스타운 - 뚜 자르 린'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다.
[김예원. 사진 = MGB 제공]
이은지 기자 ghdpssk@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