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함태수 기자] 달이 저물었다. 두산의 김경문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평소 김 감독은 냉혹하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선수들을 기용했고 특정 선수가 부진하면 가차 없이 2군으로 보냈다. 하지만 때론 한 없이 인간적인 남자이기도 했다. 고영민이 부진할 때는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이 영민이다"라며 두둔하더니,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는 "모든 것은 감독 탓"이라며 자책했다.
그런 김 감독이 떠났다. 김경문 감독은 "지금 이 시점에서 사퇴하는 것이 선수들을 서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선수들은 올 시즌 포기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 5월, "총체적 난국…힘에 부친다."
시즌 전만 하더라도 김 감독은 여유가 넘쳤다. 투타의 균형, 든든한 백업, 검증된 선수들의 존재, 수 년간 쌓아온 포스트시즌의 경험 등 올해야 말로 우승 할 수 있는 절회의 찬스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그랬다. 두산은 4월 한 달 간 선두 SK를 위협하며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5월이 문제였다. 주전들의 줄부상과 함께 마무리의 공백이 겹쳤다. 또 믿었던 선발진은 니퍼트, 김선우 외에는 모두 제 역할을 못하며 시즌 전 구상과는 180도 달라져 버렸다. 무엇보다 지난 5월 3일~8일 벌어진 LG-롯데와의 6연전이 컸다. 평소 김 감독은 팬들을 많이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팬들이 가득찬 6연전에서 무기력하게 패하자, 결국 그의 입에선 "힘에 부친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 6월,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
김 감독은 지난달 31일 팀 분위기 쇄신을 목적으로 1, 2군 코칭스태프 보직 이동을 단행했다. 그는 조계현 1군 불펜 코치를 1군 투수 코치로, 장원진 외야 수비 코치를 타격 코치로 임명했다. 또 2군에서 '투수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김진욱 코치는 1군 불펜 코치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효과는 곧 나타나는 듯 했다. 두산이 약 한 달만의 3연승(5월29일~6월1일)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선두 SK를 상대로 거둔 연승이라 의미가 깊었다. 하지만 침체의 두산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삼성-KIA를 상대로 1승 5패의 성적을 거두더니, SK를 만나서는 1승 2패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사퇴를 발표하기 전날 밤 김 감독은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며 경기장을 떠났다.
△ 두산 측, "몇 차례 말렸지만…"
두산은 김 감독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자 만류했다. 두산의 뚝심 야구를 세운 것도, 발야구를 정착시킨 것도 바로 김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의지는 확고했다. 지금 떠나야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김 감독은 지난 7년간 팀을 맡아서 6번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세 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던 명장이다. 또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선사하며 전 국민을 기쁘게 했다. 물론 이런 김 감독을 두산이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 하지만 결국 팀을 위해 떠나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두산 관계자는 "안타깝다. 하지만 워낙 의지가 확고하셨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경문 감독]
함태수 기자 ht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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