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웃을 때 생기는 주름이 꽤 멋스러운 배우다. 그는. 그런데 '복수는 나의 것'(2002), '지구를 지켜라'(2003) 등 신하균이라는 배우를 대중에 새겨나갈 때 보여준 이미지가 너무 셌기 때문일까.
그를 실제 만나보면 느껴지는 편안하고 감미로운 아우라는 그동안 별로 언급된 적이 없었다. 사실 신하균의 부드러운 면모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전작 영화 '페스티발'(2010) 이후 부터인 듯 보인다. 크기에만 집착하는 마초남을 코믹하게 연기했던 신하균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셨으며, 직후 그에게서 커피 CF모델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페스티발' 이후 선택한 전쟁영화 '고지전'에서 신하균은 '공동경비구역JSA'(2000)와 '웰컴투동막골'(2005)에 이어 세 번째로 군복을 입었다. 하지만 전작의 군인들과는 다른 느낌이 그의 조용한 변화를 감지케 했다. '고지전'의 은표는 이전 작품에서 그가 보여줬던 광기마저 느껴지는 독한, 혹은 4차원같이 독특한 캐릭터와는 달리 영화의 서사를 관찰해나가는 캐릭터. 돌출된 표현력보다는 극을 조용하고 진중하게 이끌어나가는 역할이다.
배우 신하균을 8일 오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나 그의 연기 인생에 찾아온 조용한 변화를 느껴보았다.
▲'페스티발' 제작발표회에서 신하균씨 분위기가 너무 달라보였어요. 혹시 연애하나 그런 생각도 했었죠.
그 즈음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 전에 하도 이상한 역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 했죠. 연애요? 아니에요. 그때는 없었는데(웃음). 그런데 어제도 누가 그러더라고요. 연애하고 있냐고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하. 연애 하고 싶어요. 나이 드니까 이제 기회도 안 생기고. 워낙 술을 좋아하니까 남자들만 꼬여요(웃음). 여자 만날 시간을 안 주네요.
▲전쟁영화 촬영하면서 남자배우들끼리 술로 엄청 단결되더라고요. '고지전' 때는 어땠어요?
고수씨가 술을 잘 못 마셔요. 금방 빨개지더라고요. 체력이 허락하면 끼기로 했는데. 장훈 감독님도 술을 잘 안 드시고. 그런데도 매일 맥주 한 잔씩은 했죠. 반주로. 아무래도 힘든 촬영이 많았고 서로 의지가 됐던 면은 있었어요. 가까이선 본 고수씨는 깊이 생각하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툭툭 던지는 말들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 이전 작품들을 보면 신하균이라는 배우 과거에 무슨 삶을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천성적으로 밝고 유쾌한데 낯가림이 있어요. 처음에는 어디가서 누굴 만나도 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니까 말도 없었고. 기본적으로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편이죠. 그런데 제가 했던 작품이 워낙 강렬하고 극단적인 역할이 많으니까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굉장히 평탄한 삶을 살았어요. 다만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라 표현력도 약했고 그래서 생각이 많았죠. 그러다보니 독창성 있는 것들에 끌렸어요. 책을 보거나 영화를 봐도 일상적이면서 섬세한 것들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특한 것. 남들이 안보는 소위 말하는 B급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배우가 되면서 제가 했던 영화들도 대부분 상상력이 풍부한 영화들이었죠. 캐릭터들도 극단적이며 끝을 보여주는, 감정의 진폭이 꽤 컸던. 하지만 결국 그런 캐릭터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비슷해요. 인간에 대한 관점과 바라보는 시각은 다 닮아 있죠.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만약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디렉션이 오면 바로 버려요.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항상 열려 있는 거죠. 물론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감정선은 계속 안고 가지만, 현장에서 그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 있어요. 상대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지구를 지켜라' 때는 배역에 너무 몰입해서, 백윤식 선생님이 식겁했던 것도 유명한 에피소드에요.
혈기왕성한 20대 때라 더 막 빠져들어서(웃음).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더 느껴보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무슨 정신으로 촬영했는지 모르겠어요. 지나고나니 그게 최선은 아닌 것 같아요. 몰입은 하되 이성적으로 제 캐릭터를 볼 줄 알아요 되더라고요.
▲요즘 보면 신하균씨가 꽤 잘 생긴, 조각같은 배우라는 느낌이 들어요. 신하균씨 표 멜로연기도 그래서 더 보고싶고요.
하고 싶죠. 멜로 영화도 되게 좋아하고.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소재는 정말 크고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아직 도전 안 해본 분야이기도 하고. 저하고 맞는 영화가 있으면 언제든지 하고 싶어요. 더 늙기 전에 해야겠죠(웃음).
▲'고지전'에 애착이 갔던 이유는 무었이었나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반공교육이란 게 있었어요. 남북문제는 아직 우리에게 처해진 현실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 잘못 알려진 것도 많고. 아무래도 그런 문제들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해보고 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알게 해주기 위해선 대중매체가 가장 편안한 방식인 것 같아요. 나이가 어린 관객도 충분히 공감하면서 영화적인 재미를 찾을 수도 있고. 물론 대놓고 가르쳐야겠다는 의도는 아니에요. 관객은 가르칠 수 없고 오히려 제가 가르침 받아야죠. 대신 같이 문제제기하고 같이 고민하고 공감하고.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민족은 전쟁영화를 결코 오락거리로 다룰 수 없어요. 그래서 이런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는 다들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장훈 감독님이 영화 시작할 때 사진 한 장을 보여줬어요. 어느 종군기자가 고지전이 실제 발생한 장소를 찍은 건데 느낌이 엄청났어요. 사진 속 장소는 사막같았던 황무지. 군인 한 명 없고 분명 산인데 나무도 없어요. 나무가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폭격이 가해졌던 거죠. 그리고 군인들이 다니는 구멍이 패여있고. 마치 그 시절 우리 얼굴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 상처나고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땅이 가슴이 시릴 절도였죠. 전쟁 영화이긴 하지만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한 전투신을 자랑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 사진에서 제가 받은 느낌,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의 우리네 건조한 감성들. 그것은 충분히 전달되는 영화라고 봐요.
한편 영화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고지전투를 조명한 영화.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의 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일 개봉.
[신하균. 사진=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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