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김연아 평창 PT 왜곡' TV아사히에 이렇게 사과 받아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내심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제 일기예보에 이어 스포츠뉴스다. 뉴스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낮에 받은 팩스는?'
그때였다. 정확히 10시 43분쯤 되었을까? 여성 아나운서가 한가지 사과할 일이 있다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그렇게 TV아사히의 사과방송은 시작됐다.
정확히 7월 11일 저녁 10시 43분, TV아사히의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보도 스테이션'이, 김연아 평창 연설 보도 자막내용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 방송을 냈다. 마지막에는 여성아나운서가 정중히 사과를 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결국 TV아사히는 기자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사실, 정정보도가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내심 낮에 팩스를 주고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TV아사히 측은, (100% 만족할 순 없지만) 근래에 드물게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공중파 방송으로서 이례적인 일이다.
솔직히 지난주 토요일부터 11일밤 사과방송 때까지, TV아사히 홍보국에 전화를 걸고 답변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내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팩스를 통해 오늘밤 김연아선수의 연설내용에 대한 정정보도가 나올 것이라는 답장을 받고는, 그때부터 '진짜 사과를 할까?'하는 의심반, 기대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치가 점점 높아진 것은, TV아사히 측이 제이피뉴스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이 보낸 팩스가 제대로 도착을 했는지 확인을 하면서 전한 말 때문이었다.
"꼭 오늘 보도시간에 정정보도를 할 것입니다."
몇번이고 이말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그래서 사실 기대를 하고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1시간이 넘는 뉴스 시간에 언제 정정보도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뉴스를 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뉴스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내심 불안했다.
"여기서 사과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지난 7월 6일, 저희 보도 스테이션은 스포츠코너에서,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 곧 결정'이라는 뉴스를 방송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개최 후보지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한 한국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김연아 선수의 연설을 소개했습니다만, 번역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올바른 번역은,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기회를 기회를 주신, 친애하는 IOC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였습니다.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됐었는지, 오역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단지 번역에 오류가 있었다는 정정보도여서 아쉽긴 했다. 그래도 자막으로 제대로 된 번역문을 내보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정보도 후에는 정중하게 사과까지 해, 그말을 듣는 순간 '아, 여기서 내임무는 끝!'이라는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 7월 9일 토요일, TV아사히에 전화를 걸다.
지난 6일, TV아사히의 간판 프로그램인 '보도 스테이션'에서는,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한국의 평창이 결정됐음을 보도했다. 그 과정에서 유치 결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김연아 선수에 대한 소개도 아울러 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일본에서 김연아 선수는 숙명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 선수만큼이나 관심도가 높다. 아사다 마오하면 바로 김연아 선수 이름이 튀어나올 정도로 일본인들도 한국인 못지 않게 김연아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망한다. 그런만큼 일본인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당사자 선수 못지 않은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경쟁의식은 비단 일반인만이 가진 것이 아니었다. 매스미디어도 똑같은 것이다.
바로 그 부작용이 이번에 큰 파문을 일으킨 TV아사히의 김연아 영어연설 왜곡 자막이었다. '보도 스테이션'은 김연아 선수의 연설장면을 영상과 함께 일본어 번역 자막을 내보냈다.
아나운서의 멘트에는 그다지 문제가 될 발언같은 것은 없었다.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됐음을 보도하면서, 그 과정에서 김연아 선수가 크게 기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발단은 아나운서의 멘트가 아닌 화면에 나타난 일본어 번역 자막이었다.
국내에서도 크게 보도돼 한국인이라면 국내외를 막론(인터넷을 통해 접하므로)하고 대략적 내용을 알고 있는 김연아의 연설 내용이, 그날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진보방송사로 알려진 공중파 방송 TV아사히에서 그런 식으로 내용을 180도 왜곡시켜 자막으로 버젓이 내보내다니.
당황스러운 것은 오히려 기자였다. 적어도 TV아사히만큼은 객관적으로 균형을 맞춰 보도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왜곡을 하다니. 그동안 가졌던 신뢰가 실망으 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자막은 분명하게 '왜곡'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김연아 선수의 실제 연설내용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니 '의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실제 연설내용과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이날 TV아사히에서 방영된 김연아의 영어 연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Thank you dear IOC members for providing someone like me the opportunity to achieve my dreams and to inspire others."
이 내용은 "저에게 제 꿈을 성취할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IOC 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도 스테이션'이 자막으로 내보낸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IOC 위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도시보다도 (평창을) 응원해달라."
TV아사히 측은 일본국민들을 영어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기로 작정을 한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이해를 해 줄것'이라고 착각한 것일까?
분명 영상에서는 김연아의 영어연설이 육성으로 흐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버젓이 엉뚱한 자막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자막 내용 중 '내 꿈을 위해', '다른 도시보다는' 등은 김연아 선수가 전혀 언급하지 않은 부분인데다, 자칫 잘못하면 보는 일본시청자로 하여금 김연아 선수를 독선적이고도,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었다. 심히 왜곡된 자막 내용이었다.
왜 이 같은 자막을 만들어 내보냈을까?
물론 전에도 TV아사히측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오보를 내 정정보도한 적이 있다. 아니 일본 매체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관한 한 오보도, 왜곡도, 날조도 모두 용서가 된다'는 묵계아닌 묵계가 성립돼 있다. 그래서 그동안 확인되지 않은 출처불명의 유언비어들이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신문 같은 메이저 언론에 정제되지 않은 채 마구 남발돼 왔다.
바로 그 연장선에서 한국의 김연아 선수도 도매금으로 당한 것일까?
기자는 그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9일 오전부터 TV아사히에 연락을 취했다. TV아사히 대표전화가 아닌 직접 홍보국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상하게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12시 경이 되니 바로 점심시간이므로 오후에 연락하란다. 겨우 2시쯤에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네. TV아사히 홍보부입니다"
기자가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보도 스테이션 관계자와의 통화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러자 홍보 관계자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기다린 시간이 꽤 됐다. 몇분을 기다렸을까. 계속 전화를 붙잡고 있기가 뭣해 일단 전화를 끊었다가 얼마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같은 사람이 받았다.
"죄송합니다. 보도 스테이션 관계자가 말씀하신 내용을 확인 중입니다."
"김연아 PT 영상의 자막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 TV아사히 측이 '지금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보국 직원은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하다며, 20분 후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정확히 20분 후에 기자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주말'이어서 응답하기가 어려우니 월요일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기자는 TV아사히 측의 답변이 좀 이상했다. 분명히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었는데 주말이라 응답이 안된다니, 그럼 낮에 대답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단 말인가. 기자가 걸었던 전화번호는 동일한 홍보국 번호인데 대답하는 내용은 시차별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기자는 월요일에 답변을 다시 듣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역이라니요! 무슨 소리하시는 겁니다?"
월요일 아침, 다시 TV아사히 측에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토요일에도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응답을 못받았으니, 오늘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하는데까지 확인은 해봐야 했다. '의도된 왜곡인지 아니면 실수'인지를.
그런데 곧바로 응답이 왔다. TV아사히 홍보부에서 보도 스테이션 관계자를 연결해준 것이다. D씨는 홍보부의 보도 스테이션 담당자인 듯 했다.
기자: "보도 스테이션의 김연아 평창 연설 영상 방영 때 삽입된 자막 오역과 관련해서 ..."
D씨: "오역이라니요! 마음대로 단정짓지 마세요!"
D씨는 대단히 불쾌한듯 다소 역정을 내듯이 기자의 말을 되받아쳤다. 하긴 정체를 알 수 없는 한국인 기자가 다짜고짜 '당신네 방송에 삽입된 번역 자막은 잘못됐습니다'라고 말하니 조금은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황당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일단 담당자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정확히 지적해줘야 했다.
기자: "오역의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김연아 선수는 이날 영어로 "Thank you dear IOC members for providing someone like me the opportunity to achiev..."
D씨: "복잡하게 그러지 마시고 FAX로 보내주세요."
기자: "네. 그러면 팩스 번호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도 계속 불쾌한 듯 퉁명스런 말투로 일관했다.
기자는 팩스 번호를 받은 후, 질문서를 작성했다. 문제의 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게끔 영상 캡쳐 사진 첨부와 자막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질문내용도 스트레이트로 작성했다.
FAX 를 보낸 것은 오전 11시쯤이었다. 하지만 오후 7시가 가까워 올때까지도 TV아사히 측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5시경 다시 한번 확인전화를 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제이피뉴스 칼럼 필진 중 한분과 저녁약속을 했다. TV아사히는 내일 오전에 다시 전화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다시 연락을 취해보고, 안되면 TV아사히 본사라도 찾아가서 답변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무실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낮에 통화했던 TV아사히 홍보부 D씨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해졌다. 그 이유는 D씨의 태도 때문이었다.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몇 시간 사이에 확 변하다니. D씨의 목소리와 태도가 갑자기 확 달라져 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불쾌해하며, 목청을 높이던 그가, 갑자기 정중한 태도로 나왔다.
삼국지의 '장비', 혹은 강호동 이미지였던 그는 한나절 사이에 예의바르고 상냥한 중년 남성으로 변해 있었다. 겸손하면서도 차분한 말씨에 한껏 자세를 낮춘 태도였다. 갑자기 상냥하고 겸손해진 말투가 예사롭지 않았다. 역시 자신들의 오역을 확인한 것은 아닐까?
D씨: "저희 답변을 담은 팩스 2장을 곧 보내겠습니다. 혹시모를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팩스 를 보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약 5분 후, 팩스 기계음이 들리면서 TV아사히 측이 보낸 두 장의 문서가 출력됐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에 관한 '보도 스테이션'(7월 6일 방송)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김연아 선수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번역에 대해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방송을 통해 설명할 예정입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설명할 예정입니다.' 매우 애매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정정보도를 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나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D씨는 전화통화에서 저녁 뉴스시간에 정정보도를 내보낼 것이라고 몇번씩 강조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했다.
본지는 사실 답변서가 오기 전에는 TV아사히 측이 서면을 통해 오역 사실을 인정하거나, 유감표명을 하는 수준으로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언론이 단체로 나서서 항의한다면 모를까, 단독 항의, 질의가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TV아사히 측은 답변서를 통해 방송을 통한 정정보도를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정중하고도 차분한 정정보도와 사과였다.
비록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왜 틀린 자막을 내보내게 됐는지, 그 해명은 생략됐지만, 공중파 방송사가 이 같이 정정보도를 내고, 사과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절반의 목적 달성은 이룬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TV아사히가 정정보도를 낸 것은, 수년전 '김정운 사진 오보' 사건을 제외하면 최근에는 없다.
아무튼 메이저 방송사라고 할 수 있는 TV아사히 측이, 본지의 불쾌할 수도 있는 스트레이트성 지적과 질문에 그냥 넘어가지 않고 성심성의껏 정정보도를 했다는 점에서는 대단한 용기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점만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지호 기자
문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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