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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경민 기자] 갑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일본은 물론 국내 팬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사와다 타이지(46)는 실력에 비해 불행한 삶을 살다간 천재 베이시스트 였다.
일본 스포니치 보도에 따르면 타이지는 사이판에서 스스로 목을 매 뇌사상태에 빠졌고, 집중치료실에서 생명연장 장치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타이지 어머니와 약혼자는 생명연장 장치 중지를 결정했고 17일 공식 사망했다.
엑스재팬과 라우드니스, 일본의 양대 록 밴드에서 활동해 온 천재적인 베이시스트가 46세의 안타까운 삶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사와다 타이지는 일본 록 베이스의 대표적인 천재 중 한 명이었다. 어린시절부터 클래식 기타를 쳐온 그는 동양인 답지 않은 베이스 멜로디 라인과 그루브를 앞세워 1986년 엑스재팬에 합류, 1988년 데뷔 싱글 ‘Vanishing Vision’부터 1989년 발표한 정규 1집 ‘Blue Blood’와 1992년 발표한 2집 ‘jealousy’까지 활동하면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동양적인 멜로디 라인을 내세운 엑스재팬의 음악과 달리 전통적인 하드록을 선호했던 타이지는 ‘Phantom of Guilty’, ‘Easy Fight Rambling’, ‘Desperate Angle’을 통해 그만의 음악색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타이지는 당시 동양인에게서는 볼 수 없던 화려한 베이스 주법으로 인정 받기도 했다. 슬랩을 비롯해 환상적인 태핑 등 아시아권 베이스 연주자로 독보적이었던 그는 미국에서도 인정 받았다.
베이스뿐만 아니라 기타에도 능한 타이지는 실제 엑스재팬 초기 요시키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으면서 “실력이 떨어져서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한 일화가 있을 만큼 뛰어난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천재의 삶은 1992년 엑스재팬을 탈퇴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가입한 일본의 전설적인 하드록 밴드 라우드니스를 거쳐 DTR 등의 밴드를 만들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지만 야쿠자와 연루설로 인해 전재산을 뺏기고 이혼해 노숙자로 전락하는 등 그의 삶은 불행하기 그지 없었다.
또 2008년에는 지병이던 간질과 뇌경색이 악화되는 등 개인적으로도 힘든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난해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콘서트에는 18년 만에 엑스재팬 공연에 합류해 재기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팬들을 열광케 했다.
그 또한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며 음악에 대한 의지를 보여왔지만 결국 안타깝게 사망했다.
[사와다 타이지. 사진출처 = 엑스재팬 2집 'Jealousy' 자켓]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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