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경민 기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 영화라는 장르는 시대적 상황을 뚜렷하게 반영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작 ‘플래툰’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지면서 전쟁영화의 수작으로 불리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 전을 통해 수 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겪은 뒤, 미국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던 ‘남의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면서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미국 사회는 고민했고, ‘플래툰’이 등장한 것.
수십년간‘반전’을 부르짖던 미국 사회는 홀연히 2001년 9.11테러 이후 달라지게 된다. 테러로 인해 수 만명의 인명피해를 입게 된 미국사회의 전쟁에 대한 시선은 이듬해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호크다운’으로 명백히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블랙호크다운’의 스토리는 전쟁 속의 인간의 모습이다. 작전 중 헬기가 추락하고 고립된 레인저를 구하기 위해 특수전 부대인 델타포스를 투입하고 그 과정에 입는 피해와 탈출기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플래툰’에서 보여준 민간인 살상에 대한 불편한 시선은 ‘블랙호크다운’에서는 민간인 사이에도 반군이 있다로 바뀐다. 추락한 헬기 파일럿을 구하기 위해 수백 명의 민간인과 반군을 사살하는 장면은 미국인이 아닌 제 3자 입장에서는 “왜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국의 전쟁 영화도 마찬가지다. 본격 전쟁 영화는 아니지만 박찬욱 감독의 2000년작 ‘공동경비구역JSA’에는 또 다른 패러다임이 담겨 있었다.
속칭 ‘삐라’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고, 초등학교에서는 김일성 부자를 붉은 돼지라 그리던 ‘반공 포스터’를 만들던 세대에게 ‘JSA’는 당시 남북화해무드를 담은 너무나 낯선 영화였다.
송강호,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 이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한민족’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고, 이후 한국 영화는 남북 화해 무드를 담은 영화가 다수 개봉됐다. 그렇게도 한 시대를 풍미하던‘반공영화’는 육군 훈련소에서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에서 인민군은 ‘절대악’이 아닌 ‘인간’의 모습이었다.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기에 개봉한 ‘포화 속으로’도 인민군은 ‘적’이 아닌 총을 맞아 죽어가면서 “오마니(어머니)”를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인간’이었다. 더 이상 한국 전쟁영화에서 남과 북은 절대 악인 인민군도 절대 선인 국군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전쟁 영화속 이념을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
관객의 감정을 잡기 위해 신을 길게 늘이지도, 실향민을 내세운 부연 설명도 없었다. 그저 ‘전쟁’을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연출을 맡은 장훈 감독은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으로 장사하고 싶지 않았다. 전쟁을 소재로 감동을 주는게 아닌, 전쟁 그 자체를 담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장 감독의 말 처럼 ‘고지전’은 애록고지를 지키는 악어중대를 관찰자인 강은표(신하균 분)가 직시하는 형식이다. 강은표는 관찰자로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킬 뿐,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한다.
순진한 이등병이던 김수혁(고수 분)은 전쟁을 통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변해간다. 유약하고 천진 난만한 이등병이던 신일영(이제훈 분)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에 중독된 전쟁기계가 된다.
이 모두 전쟁이 낳은 한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의 변화인 것이다. 인민군 저격수인 차태경(김옥빈 분)과 김수혁의 이념을 넘은 교감은 일부일 뿐이다. ‘고지전’의 포인트는 남과 북의 교감도 아닌 전쟁을 겪으면서 겪는 인간의 변화인 것이다.
이는 아카데미상을 휩쓴 케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2009년작 ‘허트로커’와도 비슷하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전 및 아프간전에 대한 전쟁비용으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 같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이런 배경에 제작 및 개봉된 ‘허트 로커’는 이라크를 배경으로 하지만 영웅주의라곤 찾아 볼 수 없다. 폭발물 처리반 EOD로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전쟁은 그 배경일 뿐이었다.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모호해진 2011년에 개봉한 ‘고지전’은 더 이상 남북 관계로 인해 슬픔을 겪어야 했던 우리내 현대사를 담지 않았다. ‘신파’를 배제한 것이다.
장훈 감독의 말 처럼 한국전쟁에 대한 담담한 시선과 그 속의 인간 군상, 그것이 반공이 통하지않는 요즘 시대에 ‘고지전’이 선택한 전쟁영화의 새로운 해법인 것이다.
[사진 = 플래툰-블랙호크다운(위), 공동경비구역JSA-허트로커(가운데), 고지전(아래)]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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