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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하진 기자] "저 요즘 훈련 안 하고 대학 준비하고 있어요"
올해 초 '럭비 얼짱'으로 유명세를 탔던 채성은 양이 밝힌 뜻밖의 근황이었다. 한창 대표팀에 뽑혀서 좋아하는 운동을 실컷 하고 있을 시기인데 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당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채성은 양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여자 럭비팀의 막내다. 6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고군 분투한 여자 럭비팀의 땀과 함께 럭비라는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게 귀여운 외모를 가진 성은 양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끌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수많은 매체가 인터뷰를 시도하고, 새로 결성된 럭비 대표팀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그 뿐이었다. 여전히 비인기 종목인 럭비 선수들의 애환은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성은양의 경우가 그랬다.
사실 성은 양의 고민은 2월부터 계속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이란 존재는 필수불가결이기때문에 럭비와 대학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또한 여자 럭비팀은 실업팀이 없어서 대회가 끝나면 무조건 해산 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럭비에만 올인하기에는 미래가 불안하다. 이런 이유로 성은 양은 자신이 좋아하는 럭비를 잠시 놓고 대학 준비라는 길을 선택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만은 않다. 성은 양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운동을 했기 때문에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필을 만져본 적도 없는' 학생이다. 그랬던 그가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자기 소개서를 쓴다.
준비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여자 럭비 관련 학과가 따로 있는 대학은 없다. 대학 내에 럭비부가 있더라도 남자 럭비부만 있을 뿐이고 경쟁도 그만큼 높다. 성은 양이 남자 럭비부라도 있는 대학을 지원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회가 끝나 대표팀이 해산되더라도 계속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때문에 남자 럭비팀이 있는 대학은 무조건 지원할 예정이지만 입학사정관제라는 제도가 워낙 여러가지 서류에다 면접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이 모든 것이 운동만 했던 성은양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이 같은 결심을 한 성은양에게 대표팀 한동호 감독과 강동호 코치도 어쩔 수 없이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며 오히려 다독였다. 최근 전지 훈련을 가진 전라남도 강진으로 성은 양이 따라가겠다고 보채자 '대학이 먼저다'라며 그를 달랬다. 럭비가 워낙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대학 특별 전형도 없고 감독과 코치도 성은 양을 도와줄 방법이 딱히 없어 미안한 마음에 쓸쓸한 웃음만 지었다.
대학 준비를 하면서 성은 양은 국가 대표로서 대학을 들어가게 된 선수들이 부러워졌다. 특히 제일 부러운 것은 바로 '피겨 여왕' 김연아다. 성은 양은 "피겨도 비인기 종목이었는데 김연아 선수가 잘했으니까 대학도 가고 그랬잖아요. 럭비도 한번 빛을 발휘해야 할텐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을 준비하면서 성은 양은 밤마다 간절히 기도를 한다. 어서 대학에 붙어서 하고 싶은 럭비를 하게 해달라고. 지금 훈련을 받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하게 해달라고. 또한 럭비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게 해달라고.
대학이 붙은 뒤의 계획은 이미 다 세워두었다. 진학을 준비하느라 근육이 풀려버린 몸을 럭비를 위한 몸으로 다시 다지고 싶다. 초중고 때 운동하느라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대학생활에 대한 은근한 기대감도 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살짝 드러낸 성은 양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 기자에게 손수 문자를 보냈다.
"대학 준비하면서 힘들다고 표현한 적 없었는데 털어놓아서 마음도 편해진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는 정말 뜻깊은 선물 같았어요"
지금은 잠시 대학진학이라는 다른 길 때문에 럭비를 향한 꿈을 잠시 뒤로 미룬 채성은 양. 대학 진학 후에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간절한 1승을 거두길 기원한다. 또한 럭비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지속돼 성은 양과 같은 럭비 꿈나무들이 럭비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채성은과 훈련 중인 여자 럭비 대표팀. 사진 = 채성은 미니홈피 캡쳐]
김하진 기자 hajin07@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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