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퇴진 압박 시달리는 간 수상, 북한 카드를 꺼내들다
간 나오토 수상이 북일정상회담으로,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정치적 위기 탈출을 꾀하고 있다.
25일 밤 일본언론은, 민주당 나카이 히로시 전 납치문제담당상이 지난 21일과 22일, 중국 장춘에서 북한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담당대사와 극비로 수차례 만났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간 수상이 직접 나카이 전 납치문제담당상에게 지시해 송 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간 수상과 나카이 씨 모두 함구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이 씨가 북한과 접촉한 것은 지난 봄부터. 간수상의 지시에 의해, 간수상이 방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보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때문에 그동안 제 3국에서 수차례 북한측 관계자와 만났다는 것.
북한 측 반응에 대해서 '적극적이지도, 소극적이지도' 않은, 느긋한 것 같다고 복수 북한담당 기자들은 밝혔다. 그 근거로써, 몸 달은 것은 오히려 일본측으로, 뭔가 급히 서두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간 수상 원하는 것은, 직접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일정상회담을 갖고, 납치피해자 일본인들과 함께 귀국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납치문제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수상의 두차례 방북과, 일부 납치피해자들의 일본귀국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해 왔다. 바로 이같은 주장을 이번 비밀접촉에서도 되풀이해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간 정부는 현재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간 수상의 퇴진을 연일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언론조차도 간 수상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런가 하면 며칠전에는 도호쿠 대지진 피해지역 단체장까지 당장 수상직에서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여론은 여론대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은폐, 독단적인 정책 결정, 긴급사안마저 갈팡질팡하는 갈지자 행보를 일삼는 간 수상에 대해, "당신의 퇴진이 바로 도호쿠 대지진 재해복구"라고 조롱할 정도로 국민적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간 수상은 히든 카드로 북일정상회담을 도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안팎에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간 수상의 북일정상회담은, 아직 파란불이 켜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북일회담 성사 조건으로 북한이 커다란 '선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
우선 북한은 일본정부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북일회담에 응해주는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경제원조 및 탈북 일본인 처 북한 귀국, 여기에 요도호 납치범인을 북한에 인도할 것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같은 북한의 요구에 일본정부가 가장 손쉽게 들어 줄 수 있는 것은 경제원조뿐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일본국민들 정서상 쉽게 풀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 게다가 미국과도 긴밀하게 합의가 돼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일본이 탈북자로 인식하는 '일본인 처'는 반대로 북한에서는 '납치'라고 주장,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그 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 일본에는 해방후, 조선인(당시 호칭)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영주 귀국한 '일본인 처'들이 약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근래 10여 년 사이에 북한으로부터 탈출하여 일본에 귀국한 여성들. 모두 고령으로 일본정부가 생계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일본인 처'들이 자의에 의해서 북한을 탈출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실상을 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왜냐하면 타의에 의해서 일본에 귀국한 '일본인 처'도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일본인 처'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진짜 북한생활이 고통스러워 자신의 의지하에 북한을 탈출하여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온 경우. 두번째는 탈북자 브로커에 의하여 중국여행인 줄 알았다가 일본에까지 온 케이스다.
이같은 사실은 기자가 직접 탈북 일본인 처, 그리고 탈북 브로커를 만나 취재과정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그런만큼 일본인처들의 반응도 분명하게 갈렸다. 특히 타의에 의해 일본에 귀국한 일본인처들은 대부분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쌀밥대신 라면을 먹어도 내자식들이 있는 북한으로 가고 싶어요. 여기(일본)는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부모는 이미 돌아가셨지, 형제는 한달에 한번, 그것도 시간까지 예약하고 와서는 그 시간 딱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지, 결국 나만 남아 정부에서 주는 12만엔으로 생명만 겨우겨우 부지하고 있어요. "
이말을 하는 이는 2003년 1월 29일에 일본에 귀국했다가 2년 반 후, 2005년 4월에 북한으로 되돌아간 한국명 안필화 할머니의 말이다. 안 할머니는 기자가 북한에서 두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안할머니는 인터뷰를 하면서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 그 어떠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안할머니가 강조를 한 것은 딱 두가지였다. '가족과 외로움'이었다. 자신은 일본이 나빠서, 싫어서 일본을 떠난 것이 아니라, 죽을만큼 외로워서, 죽기전에 자식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노라고 말했다.
"조선인 남편을 따라 일본을 떠날 때는 스물 두살이었어요. 그리고 북조선에서 43년을 살고 다시 일본에서 2년 반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많이 변했습디다. 내가 귀국선을 탔을 때는 일본도 그리 넉넉치 못했어요. 그랬던 일본이 엄청 발전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견딜수가 없었어요. 아들과 딸이 눈에 밟혔고, 또 무엇보다 내 손자손녀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일 술로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나와 비슷한 일본인 처들과 함께 대여섯명이 모이면 울다가 마시다가 그렇게 2년 반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일본정부에서 주는 12만엔으로 방세 5만엔, 전기세 등 공과금 2만엔, 그리고 나머지 5만엔으로 생활을 했다고 안할머니는 밝혔다. 그러나 쪼달린 생활비보다 그녀를 더 못견디게 만든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의 이데올로기는 관심도 없다고 했다. 그냥 촌로로서의 가족에 대한 소박한 그리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일본에 온 것은, 주간신조 기자와 탈북자브로커들의 절대적인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 나중에 연길, 대련을 거쳐 선양에서 일본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그 대가로 탈북자 브로커가 1천만 엔을 일본대사관에 요구하는 바람에 잠시 파문이 일기도 했다. 물론 일본대사관은 이같은 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2005년 4월 베이징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김정일만세'를 부르고 북한에 있는 가족품으로 돌아갔다. 그 공로로 그녀는, 중국 국경과 가까운 깊은 산골 길주에서 현대식 아파트 한채와 함께 가족 전원이 평양으로 이주하는 큰 선물을 북한당국으로부터 받았다. 역시 '김정일만세'는 북한에 있는 가족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녀와, 그리고 그 가족이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적어도 기자는 그렇게 그녀를 이해했다.
이렇듯,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일본인 처'의 위상이나 생활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령으로, 사상이나 정치와는 전혀 동떨어진 할머니들이 대부분이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산 기간보다 북한에서 생활한 시간이 두세배나 더 많은, 그래서 가족들이 그곳에 있고, 또한 앞으로 살날보다는 죽음에 다다르는 길이 더 가까운 할머니들이어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조국에 돌아왔으나 조국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 어쩔 수 없는 일본생활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들 100여 명의 할머니들은, 4,50년 넘게 북한에 살아서 지금도 한국어로 웃고 울고 수다를 떨고 싶어한다고 한다. 실제로 기자에게도 7,8년전, 일본 외무성 관계자로부터 탈북자 할머니 2-3명을 매달 한번씩 만나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기자에게는 그 대가로 탈북수기를 쓰게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는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들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한국말을 쓰는 기자와 만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떤다고 해서 그녀들의 처절한 외로움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외로움을 깊게 할 뿐이다.
훗날 평양에서 만난 안필화 할머니에게 그말을 전했더니 실제로 그렇다고 했다. 자신이 일본에서 생활할 때,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을 만나면 그날 밤은 당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눈물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때로는 낯선 그 한국인을 따라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고 했다.
아무튼 탈북자든 납치든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일본인 처'에 대한 성격은 대단히 애매모호하다. 실제로 가족들이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할머니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측이 자신있게 '납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본과 북한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21-22일 이틀에 걸쳐 진지한 논의를 했지만 얻은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특히 북한 측이 일본 측에 비해 상당히 여유를 부리는 태도여서 내심 일본측을 당황케 했다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지금 북한은 어쩌면 가장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지 몰라요. 왜냐하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정부 쪽에서도 똑같은 제의를 해 온 걸로 알고 있어요. 남북정상회담만 성사되면 그에 상응하는 큰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한 걸로 알고 있는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국민적 지지가 바닥을 기는 이명박대통령과 간 수상이라는 두개의 떡을 양손에 쥐고 있다고 할 수가 있어요. 그걸 북한은 어느 것부터 먹느냐 선택만 남은 것일뿐, 물론 조건이 좋은 쪽부터 먼저 먹겠죠."
북한과 자주 왕래를 하는 중국 조선족 기업인의 말이다. 그는 DJ정권 때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간 수상은 고이즈미 전 수상이 그랬던 것처럼,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일부 북한에 남겨진 납치피해자들을 데리고 일본에 금의환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의도를 북한이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 그래서 북한이 일본과의 접촉에서 호기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간 수상 측은 사임압박이 강해질 8월 이내에 어떡하든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사임만은 피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려면 어떡하든 북일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도호쿠 대지진 복구는 하루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원전의 방사성 오염 문제 은폐로 잘해야 본전이다.
때문에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에 처한 간 수상으로서는, 북일정상회담으로 국민적 지지율을 끌어 올려 사임압박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도 쉽지 않을 듯하다.
간 수상은 무엇보다 일본국민들의 염원인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후쿠다 정권 때, 북한은 납치문제 재조사를, 일본은 대북경제재제 완화를 합의한 일이 있다. 하지만 1년마다 연례행사처럼 바뀌는 일본 수상 때문에, 이마저 흐지부지 돼버렸다. 그 후 간간이 이어지던 북한과의 연결 파이프가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절됐다가, 작년 가을부터 다시 이어지게 됐다. 그리고 현재 상태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외무성을 통한 정식 외교 루트가 아닌, 간 수상 개인이 비밀리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 때문에 실패할 경우 그 영향은 고스란히 간 수상에게로 간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게다가 외교적으로 지난 봄부터 남북한 접촉이 빈번해지고, 미국 또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북한 김계관 제1외무차관을 뉴욕에 초대해 6자회담을 위한 예비교섭에 나서는 등, 북한을 둘러싼 외교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간 수상이 노릴 수 있는 것은 역시 납치피해자의 일본귀국이다. 그러면 사임압박은 물론, 수상을 비판했던 여야당과 여론을 잠재울수가 있고, 국민적 지지율도 수상취임 초기상태로 되돌릴 수가 있다.
결국 간 수상을 정치적으로 살릴 수 있는 키는 바로 북한이 쥐고 있는 셈이다.
북한과는 일단 계속 만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 간 이달 안으로 중국에서 만날 예정이라는 중국 조선족 기업인의 귀뜀도 있다. 그의 전언에 의하면, 간 수상에 대한 북한의 이미지가 그리 나쁜편은 아니라고 한다. 과거 무라야마 당시 사회당 출신 수상 이후, 역대 수상 중 북한 최고위층이 가장 기대를 하는 정치인이라고도 한다.
이를 바꿔 말하면, 북일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같은 북한의 반응에 간 수상도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편, 일본 국민들은 일단 관망하는 자세다. 어차피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는 누가 해결해도 해야 되는 것. 비록 국민적 지지율이 낮은 간 수상이지만, 납치피해자들을 일본에 귀국시킬 수 있다면 한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북한이 원하는 대로 '큰 선물'을 주는 것은 반대를 하고 있다.
이를 간 나오토 수상은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과연 어떤 정치적 수완으로 북일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을까? 8월이 주목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재순 기자
문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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