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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선애 기자]돈 없고 힘 없고 내세울 건 ‘당당함’ 밖에 없는 여성 캐릭터들이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마치 90년대 말 트렌디 드라마 속 김희선을 다시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방송된 SBS ‘미스터큐’와 1999년에 방송된 SBS ‘토마토’는 김희선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대표적인 트렌디 드라마다. 두 드라마에서 김희선은 각각 속옷회사, 구두회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으로 출연해 남자주인공 김민종, 김석훈과의 사랑을 이뤘고, 동시에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무시 받는 설움을 떨쳐냈다.
최근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도 10여년 전 김희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SBS 주말극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김선아 분)는 고졸 학력으로 여행회사의 말단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10년간 상사의 인격모독, 성희롱 등을 꿋꿋이 버텨냈다. 더 밑으로 떨어질 ㈐側?없어보였던 그녀는 시한부 판정까지 받아 ‘처량함’에 절정을 찍었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연재는 다니던 여행회사 오너의 외아들 강지욱(이동욱 분)과 사랑감정이 싹트면서 행복을 예고하고 있다.
3일 첫방송을 시작하는 SBS 새 수목극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분)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에 ‘좀 놀았던’ 은설은 삼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매번 고배를 마신다. 그러다 재벌그룹의 아들 차지헌(지성 분)의 비서로 취업하며 그와 티격태격하는 사랑을 키워나가게 된다.
‘보스를 지켜라’의 전작 ‘시티헌터’ 속 김나나(박민영 분)도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였다. 교통사고로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엄청난 빚더미를 안은 채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하던 나나는 청와대 경호원으로 취업하고 ‘시티헌터’ 이윤성(이민호 분)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최근 종영한 KBS 2TV ‘동안미녀’ 속 이소영(장나라 분)은 가장 전형적인 ‘김희선표’ 90년대 캔디녀를 대표한다. 별볼일 없던 30대 중반의 소영은 나이를 25세로 속이고 패션회사 취업에 성공한 후 동료 최진욱(최다니엘 분)의 사랑 속에서 남다른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의 길을 걷는다.
하나같이 가난해 신용불량이고 고졸이나 삼류대 졸업으로 학벌이 안 좋은 여자 주인공들이 한참 부족한 스펙과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고 사랑과 성공을 모두 쟁취한다는 이야기가 90년대 말 트렌드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여주인공에 비해 완벽한 스펙의 ‘악녀’가 등장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미스터큐’에선 송윤아가, ‘토마토’에선 김지영이 악녀로 등장해 사랑, 일 모두에서 김희선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반면 ‘여인의 향기’와 ‘보스를 지켜라’에선 서효림과 왕지혜가 재벌녀로, ‘동안미녀’에선 김민서가 직장 상사로 각각 등장해 여주인공과 격돌한다. 이런 악녀들의 공세에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보호막이 되어 준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90년대 말 드라마 속에 등장한, 어떻게 보면 평균 이하인 그녀들이 사랑과 일에서 모두 성공하는 이야기는 꿈만 꾸던 일이 현실이 된다는 대리만족의 쾌감을 안겨주며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다시 브라운관을 점령한 90년대의 캔디녀들. 이는 10여년전 그 때만큼 고단한 현실과 이를 이겨내고 싶어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미스터큐'와 '토마토'의 김희선(위), '여인의 향기' 김선아-'동안미녀' 장나라, '보스를 지켜라' 최강희-'시티헌터' 박민영. 사진=SBS, 에이스토리, SSD 제공]
강선애 기자 sak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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