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00억 대작들이 즐비하게 개봉한 여름이었다. 전쟁액션, 코믹액션에 SF와 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블록버스터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벌일 때, 조용히 극장가를 점령한 영화가 있다.
바로 개봉 2주 만에 손익분기점인 140만 관객을 돌파한 스릴러물 '블라인드'가 그것이다. 영화는 흥행과 함께 작품성에서도 좋은 평을 얻는데 성공했다. 조용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격이다.
아직 100만 관객을 동원하기 전이었던 지난 18일 '블라인드'의 안상훈 감독을 서울 강남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치던 안상훈 감독은 힘들었던 점을 말해달라는 청에는 "시각장애인 연기도 있고 멍멍이(달이) 연기도 있고 디테일한 부분이 그러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시각장애인 연기를 한 배우 김하늘에 대해서는 "하늘씨의 연기를 세세하게 신경써야 했고 하늘씨 본인도 굉장히 예민하고 힘들어했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시각장애인 민수아가 아닌 김하늘로 보이면 안 됐기에 그 부분이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던 부분이다"라고 전했다.
너무 과하지 않게 시각장애인을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은 김하늘도 김하늘이었지만, 감독 역시도 시각장애인을 감각으로 이해해야 했다. 이미 지난 언론시사회에서 안상훈 감독이 1년 정도 시각장애인 도우미 활동을 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다가간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결과 칭찬을 많이 들은 치약신과 메이크업신, 금붕어신 등이 탄생했다.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민수아가 지금과 같은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닌 초능력자 신비소녀였다고 한다.
"그 해 11월 말 어둠속의 대화라는 전시회를 갔다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장르부터 다 바꾸고 기존 것을 다 엎어버렸다. 이후 2008년 1월 요이땅! 윤창업 프로듀서와 최민석 작가와 함께 송구영신 등산하면서 지금의 '블라인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시각장애인에 대해 실제로 접하기 전에는 매체를 통해서 접할 수 밖에 없는데, 매체를 통해서 받았던 정보들이 한 쪽으로 몰려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보통사람들에게 이미지화해서 보여진 모습들은 어둡거나 다운돼 있거나 장애를 극복하려는 모습, 보통은 그런 쪽으로 모여있지만 실제 만났을 때는 전혀 달랐다. 그분들은 핸디캡이 있다는 신체적인 특징이 있는 것 뿐, 외적으로는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런 모습들을 우리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고 그분들 역시도 보여달라고 이야기들을 했다."
안상훈 감독은 "어느 누구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다"라며 "악을 물리치고 더불어 한 여성이 개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하나의 완성된 매력적인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공포에서 휴머니즘을 간직한 스릴러로 변모해간 과정을 들려줬다.
또 하나. 이 영화가 칭찬을 들은 신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전철 추격신이다. 눈 감은 주인공 바로 앞에 존재하는 눈 뜬 범인의 스릴 넘치는 추격에는 대신 눈이 돼준 스마트폰이 재기발랄하게 존재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협찬이 안돼서 울컥하기도 했다. 안 감독은 "협찬이 안돼 결국 대여해서 촬영했는데 망가졌었다. 물어줬지"라며 웃었다. 그래도 영화 속에 등장한 브랜드의 스마트폰이 장애인 근접성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한다. 출시 초반에는 시각장애인에게 무상 공급되기도 했다고.
영화 속 의문점이었던 조희봉 형사(조희봉 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비중이 꽤 크고 김하늘과 은근한 멜로 라인도 구축했던 그는 너무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감독은 "다들 조 형사는 마지막에 트렁크에서 기어나오는 걸로 해달라고 하셨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애초에 처음부터 퇴장을 완벽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낭떠러지 벼랑 끝에 발 하나 걸쳐놓은 상태로 수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과정을 극복했을 때 이 여성이 스스로 일어서서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러니 주변의 조력자나 수아의 눈이 되는 것들이 완벽하게 빠져주는 상태여야 했다"라고 밝혔다. 온전히 수아의 능력으로 극복한 상태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래도 은연 중 관객들이 기대하게된 둘의 멜로 라인에 대해서는 "조희봉 선배님에게 애초부터 '멜로 없다'라고 말하니, '멜로가 있었으면 내가 캐스팅이 되지 않았겠지' 그런 농담하고 그랬다"라며 "살짝 고민 한 적이 있었지만 그냥 뺐다. 어떤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그리고 싶었지, 다른 감정은 깔끔하게 배제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안상훈 감독은 실제로도 가장 자신없는 장르로 멜로를 꼽으며 "차기작은 멜로는 아닌 따뜻한 것을 하고 싶다. 6~7년 동안 공포, 스릴러만 하다보니까 힘들더라. 다음은 내 영혼의 치유를 위해 건강하고 밝은 것에 시도해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욕심은 없냐는 질문에 "하고 싶은 생각은 당연히 있다"면서도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블록버스터는 기존 충무로 방식으로 감독의 머리에서 움직이는 차원이 아니다. 시스템 단위로 운영해야 하고 그 정도의 내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영화적인 연출력의 역량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을 때 해야한다고 본다. 그러기 전에는 좀 더 겪고 공부를 해야한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안상훈 감독. 사진=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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