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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선애 기자] 요즘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는 ‘재벌’이다. 재벌가 자제로 성격은 괴팍할지언정 얼굴은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가진 것 없지만 당당한 여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국 사랑을 이뤄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SBS 수목극 ‘보스를 지켜라’(극본 권기영/연출 손정현/이하 ‘보스’)도 기본 틀은 기존 드라마와 별반 차이가 없다. DN그룹 오너 차회장(박영규 분)의 철부지 아들 차지헌(지성 분)이 한때 좀 놀았던 노은설(최강희 분)을 비서로 맞이해 사랑에 빠지고 집안의 반대를 이겨낸 후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 구조 그대로다.
그러나 ‘보스’는 이 기존의 드라마 속 재벌관을 무참히 깨버렸다. 똑 같은 재벌 이야기 구조이긴 하나, ‘보스’에는 기존 드라마들과 겹치는 재벌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재벌들이 저마다 색깔을 분명히 갖고 있어 입체적인데, 기저에 어린아이 같은 ‘순수’가 깔려있다. 드라마의 악역으로 나쁜 짓을 일삼는 전형적인 재벌 캐릭터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게, ‘보스’ 속 재벌 캐릭터의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보스’에는 ‘밉상’이 없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재벌이 없고, 다들 어딘가 하나씩 하자가 있는 행동을 일삼는다. 그래서 밉지가 않다.
극중 차회장은 재벌기업의 오너다. 불 같은 성격에 부하 직원을 때리는 무서운 면도 있지만, 배탈이 난 부하 직원을 걱정하는 의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아들 차지헌이 불량배들에게 맞고 들어오자 ‘보복 폭행’을 가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만, 벌로 받은 사회봉사 활동에 누구보다 열심히 임한다. 입으로는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똥 귀저기’를 빨고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등 소탈한 차회장의 모습은 그의 다혈질 성격과 어우러져 드라마에 큰 재미를 선사한다.
차회장이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김영옥 분)의 말에 복종하는 마마보이가 된다. 회사에선 다혈질 카리스마를 내뿜던 ‘회장님’이 집에선 철부지 아들이 된다는 것 자체가 반전이자 기존 재벌 캐릭터를 전복시키는 설정이다.
남자주인공 차지헌, 차무원(김재중 분)도 여느 ‘본부장님’들과는 전혀 다르다. 둘 다 그냥 ‘아이’같다. 차지헌은 드라마 초반부터 정신연령이 한참은 어린 연기를 선보여 왔고, 그래서 비서 노은설에게 길들여진다는 게 ‘보스’의 기본 이야기틀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재계의 프린스’ 차무원마저 알고보니 차지헌 못지 않게 정신연령이 어리다. 그나마 기존 드라마들의 재벌남 이미지를 유지하던 차무원마저 ‘보스’에선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웃긴 캐릭터가 돼버린다.
재벌가 딸인 서나윤(왕지혜 분)도 만만치 않다. 차지헌과 차무헌을 모두 노은설에 빼앗긴 그는 마스카라가 다 번질 정도로 펑펑 우는 게 특기다. 얼굴에 철판 깔고 노은설에 집에 들어가 얹혀 살기도 하고, “교육의 힘”이라 외치며 스스로를 다잡지만 결국엔 망가지고 만다. 기존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재벌딸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 재벌가 사모님들인 신숙희, 황 관장(김청 분)의 캐릭터도 재미를 더한다. 차회장과 서로 유치한 욕을 하면서 이름 부르며 싸울 땐, 나이 지긋한 이들마저 어린아이가 돼버린다.
‘보스’ 속 재벌들은 겉은 성인이지만 하나같이 속은 어린 아이다. 그래서 더 동화 같은 매력이 있고, 인간적이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는 ‘보스’의 재벌들에게서 더 친근함을 느낀다.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재벌, 그런데 현실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귀여운’ 재벌을 ‘보스’는 그려냈고, 이는 배우들의 명연기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위부터 최강희, 지성-김재중, 왕지혜, 박영규, 차화연-김청. 사진=SBS 방송캡처
강선애 기자 saka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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