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한 여인이 목에 빨간 금이 간 채 죽어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인이 죽어있는 집, 욕실에서는 한 남자가 벌거벗은 채 샤워를 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돼지.
화면은 전환돼, 이 남자 경민(목소리 오정세 분)이 중학교 동창 종석(목소리 양익준 분)과 오랜만에 나누는 술자리로 바뀐다. 15년만에 만난 동창끼리 나누는 술자리는 사실 화기애애한 자리가 돼야하지만, 갑자기 연락이 온 경민이 종석에게는 마냥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종석은 방금 자신의 열등감에 못이겨 유일하게 자신을 돌봐주는 여자친구를 때리고 나온 길이었다.
종석 역시 무존재에 가까운 아이였다. 가난은 지긋지긋했고 경민의 부(富)가 부러웠지만, 그의 비굴함은 싫었다. 늘 놀리고 때리는 동급생들이 혐오스러웠지만 차마 반항하지는 못했고, 그런 자신을 못본체 하는 다른 아이들은 모조리 돼지처럼 보였다. 그저 자기 살 찌우기에만 급급한.
그러던 경민과 종석의 삶이 바뀐 것은 불현듯 등장한 철이(김혜나 분) 때문. 철이는 힘센 동급생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경민과 종석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줬다. 철이가 학교폭력으로 퇴학을 당한 후에도 하교 후 늘 그를 찾아갔던 것은 그의 존재가 악몽같은 학창시절, 없어서는 안될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있는 '돼지의 왕'의 표현 수위는 사실 동종 소재의 영화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사운드와 그림의 질감,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소름끼치는 잔혹함을 묘사하기에 충분했다. 경민과 종석, 철이의 학창시절 목소리를 각각 박희본 김꽃비 김혜나 등 여배우가 소화했다는 점도 독특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토리 자체가 주는 중압감과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연상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사회 약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강자들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고발한다. 동시에 악을 이기기 위해 더 강한 악이 돼야만 한다는 철이의 말로와, 종석, 경민의 변화된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금 돌이키게 만든다.
'돼지의 왕'은 지난 14일 폐막한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NETPAC),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에 성공했다. 개봉은 11월 3일. 청소년 관람불가.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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