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사물의 비밀'은 배우 윤다경(40)을 발견케 한 작품이다. 그녀는 영화 속 파격 정사신의 주인공이다. 영화 초중반부 등장하는 정사신은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수위는 물론, 표현의 밀도가 꽤 충격적이다.
윤다경이 맡은 역할은 횟집녀. 횟집녀는 수 년을 함께 해온 남편을 두고 회 뜨는 젊은 청년과 외도를 하게 된다. 이름도 주어지지 않은 횟집녀일 뿐인 그 여자가 정사신 이후 비로소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의 등장은 짧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단순히 수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횟집녀의 눈빛이 변해가는 과정이 그녀의 얼굴에 드라마틱하게 번져나갔다. 노출 이상의 내공이 있는 배우였다.
윤다경을 만나 영화에 출연케된 계기를 물었다.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해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독일에서 극단생활도 한 그녀는 영화 '밀애'와 '백야행' '초능력자'를 비롯해 연극 무대에도 오른 잔뼈 굵은 배우였다. 한때는 그녀의 본명인 손지나로도 활동했지만 인생의 큰 기점을 겪고난 뒤, 윤다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다.
20대부터 독일 갔다 올 때까지 시기는 내게 일종의 혼란기였다. 당시 사귀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과 이별하고 질풍노도의 혼란을 겪었다. 그게 정리가 된 것이 31살 때. 그 전까지는 연극에 발을 하나만 걸치고 언제든지 다른 길로 갈 준비가 돼있었다. 이후에는 배우로 살아가는 내게 이름을 지어주고자 윤다경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셀레브레이션 하게 됐다. 일종의 다시 시작하는 의미였다. 그때 변영주 감독님의 '밀애'에 출연하면서 장편영화에 데뷔하게 됐다. 이후 부터는 배우로서의 내 삶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대 때는 언제든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때 만나던 친구가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주지 못했기에 굳이 내가 이 일을 고집해야만 하나 고민하던 혼란의 시기였던 것 같다.
-독일과의 인연이 길다고 들었다.
그렇다. 처음에 간 건 1993년 대학 때 어학연수로 갔었다. 대학 때 전공이 독일어였다. 이후 1999년도에 극단 살푸리 공연을 위해 가게 됐다. 6년만에 간거다. 또 2003년도와 2005년도에도 갔고 2007년도에는 해외투어 공연차 가게 됐다. 독일 문화원을 통해 프랑크프루트로 한달 어학연수 코스를 다녀온 것은 2009년도였으니 꽤 여러차례 갔다.
-'사물의 비밀'에 횟집녀 출연 계기는?
출연에 앞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건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벗고 안 벗고가 중요한 문제이고 내 사진을 아무렇게나 돌려보는 것에 대해 난 과연 의연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또 이제는 결혼을 한 뒤인터라 신랑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했다.
남편에게 물었더니(윤다경의 남편은 극단 여행자의 대표 양정웅씨다) 매력적이라 느껴진다면 하라고 하더라. 그 역시 연출가이기에 배우에게 노출을 요구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부인이 배우라고 못하게 하면 너무 이중잣대 아니겠냐고 말해줬다. 또 당당하게 그 역할을 준비하고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내 용기가 멋있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그렇게 용기를 줬다. 남편 뿐만이 아니다. 시어머니도 응원해줬다. 가족들이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고민한 것들이 쓸데없는 게 되더라.
물론 횟집녀의 캐릭터와 대사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것이 가장 컸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사랑을 불륜이라 이야기 하겟지만, 또 그 결혼 생활을 유지했더라면 안정적으로 살았겠지만 어느 날 찾아온 누군가가 내 존재를 알아줄 때,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이 멋있었다. 어차피 죽으면 썩을 몸 내 맘껏 불태울 것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것도 매력적이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불륜 이후 그 사람은 많은 일을 겪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 탓도 하지 않는다. 이후에도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로서 잘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주체를 찾은 것이니까.
남편도 허락을 하니 나는 이 매력적인 사람과 만나보자 했다. 횟집녀의 삶에 대한 열정이 훼손되지 않게 그 존재를 아름답고 의연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정사 장면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 배우인 최수용이라는 친구도 상당히 오픈되고 낙천적이며 유쾌했다. 서로 경계없이 종수와 횟집녀로 마주하자 했다.
이후에는 횟집녀를 내게 제안해주신게 감사했다. 인물이 나를 찾아온다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내가 그동안 연기?던 역할들을 보면 실제 내 인생과는 다르게 굴곡 많고 힘겨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런 역할이 왜 내게 올까 질문을 던져보기는 하는데 하나하나 만나가면서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횟집녀의 내면이 깊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찍는데 남편 역의 배우 선배님이 오신 순간 감정이 한번에 정리가 됐다. 텍스트로 생각했던 것이 구체화된 것이다. 그 남편을 보니 지금까지의 횟집녀의 세월이 다 떠올랐다. 너무 선량해보이는 남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횟집녀.
-영화는 40대 여자를 이야기한다. 실제 윤다경씨도 40대다. 여배우로서 40대란 어떤 나이인가?
20대 때는 외형적으로 정말 예쁜 나이 아닌가. 새로운 꿈도 있고 톡톡 튀는 매력도 있지만 내게 20대는 혼란기였다. 인생, 결혼, 사랑, 가치관 이런 것들이 모두 다 혼란스러웠다.
30대는 혼란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미동이 있었던 기간이다. 그리고 40이 되니 여배우로선서는 사실 어중간한 시기다. 엄마 역을 많이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엄마만 있나. 요즘 여자들 직장생활도 많이 하고 자의식도 강한데. 오히려 제작하는 쪽에서 여배우들을 너무 하나로만 몰아가고 있지 않나 안타깝다. 실제 나이 70~80 할머니들도 다 여자고 자기 주체가 강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줌마로 여배우들이 폄하되는 것이 안타깝다. 연령으로 인간을 다루는 것은 일종의 인종차별이다. 내게도 40대는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도전할 수 있는 시기다. 어릴 때는 오히려 더 경직되있던 시기였던 반면 나이가 들면 고집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져가고 충만해진다. 조급해질 필요도 없고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나이 들고 주름이 생기는 것들에 연연하게 되지도 않고, 예쁘다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 좋다.
-올해 결혼을 했다. 결혼이 배우 인생에 끼친 영향은?
사실 난 결혼에 회의적이었다. 지금의 신랑이 아니었으면 안 했을 것이다. 여배우의 일을 이해하고 소통이 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 여배우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배우로서의 나를 사랑해놓고 막상 여배우로서의 아픈 부분은 보지 않고 결혼을 한 뒤에는 자신의 여자로만 남아주기를 바라곤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돼'라는 세상의 잣대들과 만나는 것이 피곤하니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과는 너무나 편안하고 웃음이 많이 난다. 인생을 같이 바라보면서 같이 갈 수 있는 소울메이트를 만난 느낌이다. 열렬한 사랑 이라기 보다 같은 목표를 향해 즐겁게 뚜벅뚜벅 걷는 친구 같은 느낌. 같이 공감하고 같이 산을 넘어갈 수 있는 친구를 만나 너무나 편안했다.
여기에 나는 결혼을 통해 또 한 분의 선물을 얻었다. 바로 시어머니. 희곡작가로 드라마 작가도 하셨다. 현재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 집필은 못하시지만 늘 낙천적이고 지금도 영화공부를 하신다. 저한테는 정신적인 큰 스승이시다. 열정적으로 사시고 어떤 연령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하다. 정말 자연스러운 분이다. 어머니가 '사물의 비밀' 기자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셨다. 우리 새애기가 검은 파도가 출렁이는 무서운 깊은 바다에 벼락같은 절벽을 여배우로서 하나 넘은 것 같아 너무나 기쁘다라는 글이었다. 마음이 울컥했다. 많은 격려를 해 주신다. 어느 시어머님이 며느리가 파격적인 정사 장면을 했는데 와서 보실 수 있겠나. 친정 엄마도 겁나서 뒤늦게 보셨고 아버지는 아직도 못보고 계신데(웃음).
- 인터뷰 ②에서 계속 -
[사진= 유진형 기자zolong@mydaily.co.kr]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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