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기입원해야했던 손정의, 병원에 집무실을 차리다
일본 근대사에서 1800년대의 풍운아가 사카모토 료마라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IT산업의 쓰나미를 몰고 다니는 이는 역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일본에서 손 회장이 움직이면 늘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인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현대판 풍운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4개 현에 100억 엔이라는 재해연금을 내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런가 하면, 원전폭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태양에너지 활용 친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일본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바로 그에 대한 일대기를 매일 제이피뉴스에서 연재하기로 한다.
"스미마셍(미안합니다)!"
손정의는 이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타인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것은, 아마도 이때였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창업 1여 년만의 간염 발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손정의는,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업한 지 채 1년이 넘지 않았는데다, '사업'이란 씨를 뿌려 이제 겨우 싹이 막 움트려 할 때, 그만 감염에 걸린 것이다. 그 새싹을 키워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하기까지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는 반드시 손정의 자신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묘안을 생각한 것이 '병실업무'였다. 비록 치료 때문에 입원하게 됐지만, 부득불 병실에서 회사 업무를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직원들의 업무보고나 결재할 서류는 병원으로 가지고 와야 했다. 그럴 때마다 손정의는 직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일부러 병원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또 일상복 차림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직원을 맞이해 예의에 어긋나서 미안하다고.
그는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미안합니다'를 되뇌었다.
그 당시 퍼스널컴퓨터(개인용컴퓨터) 협회 전무이사였던 시미즈씨는 "병실에 누워 상대방으로부터 업무 얘기를 들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손정의 씨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보였다"고 증언했다.
그렇다고 100% 병실에서만 업무를 본 것은 아니었다. 꼭 그 자신이 가야 할 회의 장소에는 의사의 허락을 받아 참가했다. 물론 외부에는 그가 병중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
하지만 비밀이라는 것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만 존재하는 법. 손정의도 그랬다. 그와 직원들은 회사경영에 타격을 줄까 봐 쉬쉬하면서 그의 투병생활을 비밀에 부쳤지만,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가 염려하는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관 스물한 살에 발명품을 만들어 샤프 사에 1억 엔을 받고 판 기업가적 소질을 증명해 보였듯이, 그와 거래를 하고 협력하는 파트너들은 비록 그가 투병 중이고 나이도 어린 청년실업가에 불과했지만,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능력을 믿고, 짐짓 모른 척하고 거래를 끊지 않았다.
사실 이 같은 배려(?)는 손정의에게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자원이었다. 만약 거래처나 합작 파트너들이 사주가 병들었다고 거래를 끊거나 협력사를 다른 기업으로 바꿨다면, 오늘날 손정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손정의는 상대방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한번 그와 눈을 맞추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그와 똑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흡입력, 그 무언가가 있었다.
이 같은 그의 능력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1일, 동북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후쿠시마원전이 폭발하자, 그가 자연에너지 운동을 목적으로 태양열발전소 건립을 주창했을 때, 일본의 도부현 지자체장 35명이 선뜻 동참한 사실을 보더라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의 흡입력은 여실히 증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실히 그는 사람을 설득할 줄 안다.
아무튼, 그는 일본경비보장(현 세콤)의 부사장이었던 오모리 씨를 사장으로 영입하고, 손 사장 자신은 회장으로 한발짝 뒤로 물러서, 병실에서 회사 경영을 원격조정하는 나날들이 계속됐다. 날마다 확인해야 할 업무내용은 팩스로 받았고, 간단한 지시는 전화로 해결했으며, 설명과 설득이 필요할 때면 병원으로 직원을 불러 직접 일대일로 소통했다.
손정의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앞에 놓인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도 알았다.
그는 회사 일이 없을 때는 병실에서 책을 읽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문학 서적에서부터 역사, 실용서, 컴퓨터 같은 전문서적, 그리고 회계사 관련 책 등 수많은 분야의 책들을 섭렵했다. 3년여의 투병기간 동안 그가 읽은 책은 무려 4,000여 권. 훗날, 이때의 독서량은 그가 지혜를 얻고자 할 때,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 할 때,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비전이 불투명할 때, 아주 긴요한 자양분이 됐다.
"이때 회사와 약간 떨어져 냉정하게 볼 수가 있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미세한 계수를 분석하기도 하고, 계기비행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다고 회사가 편안하게 손정의가 구상한 대로, 계획한 프로그램대로 원활하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가 병실에 있는 동안 회사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사장으로 영입된 오모리 씨와 사원 간의 충돌로, 중책을 맡았던 직원이 다른 경쟁사로 이직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회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임사장과 매번 마찰을 일으키다가 결국엔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것이다.
▶ '설상가상', 10억 엔의 빚을 지다
이 일로 회사는 큰 타격을 받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텔레비전에 광고까지 해가면서 무리하게 추진했던 데이터베이스 사업이 실패로 끝나 10억 엔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손정의가 아니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그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번역기 하나로 1억 엔을 벌어 소프트뱅크의 종잣돈을 만들었듯이, 그는 상품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모리사장과 사원들간의 갈등은 계속됐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해 온 그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발병한 감염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역으로 복귀할 수도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마침내 획기적인 상품을 개발해냈다.
'NCC BOX'가 바로 그것이었다. 전화를 걸 때, NTT(일본에서 'KT'와 같은 기업)와 제2의 전화 회선 중 자동으로 통화가격이 싼 쪽을 선택하는 어댑터를 개발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은 NTT에서 제공하는 전화 시스템이 전부인 줄 알았고, 또 다른 회선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에 손정의는 제2의 회선을 이용해 NTT만을 사용할 때보다 저렴하게 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틈새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보면 대단히 유용한 제품이었다. 이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다.
이 개발품은 현재도 '수퍼- LCR' 형태로 일본 내 대부분의 전화기 내부에 내장돼 사용되고 있다. 이 'NCC BOX' 개발품으로 손정의는 20억 엔의 수익을 올렸다. 당연히 10억 엔의 빚도 갚을 수가 있었다.
▶ 잡지 분야의 적자, 이대로라면 사업 철수해야하는 상황..
이렇게 84년 한해는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맛보면서 외형적으로 급성장했다.
컴퓨터 관련 소매점포 6,400여 곳 중, 200여 곳이 '일본 소프트뱅크' 사의 상점이었다. 말하자면, 컴퓨터 유통시장의 약 5%를 바로 '일본 소프트뱅크'가 점유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 손정의가 전력을 다해 심혈을 기울였던 출판분야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많은 자금과 인원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6개의 잡지 중 한 잡지만 흑자였고 나머지는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때 손정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만약 이대로 가다가는 만성적자로, 모든 잡지발간을 중지해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버추얼 컴퍼니(Virtual Company)’ 손정의는 일본기업에 전혀 생소한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10명 정도의 사원을 한팀으로 구성, 독립 채산성 형태로 운영하되, 실적이 좋으면 팀장에게 월급 외에 인센티브로 회사의 주식을 주고, 실적이 나쁘면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게 하는 이 제도를 도입, 시행한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팀의 능력에 따라 과감하게 M&A도 추진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권한도 부여했다.
원래 일본의 상법은, 회사의 주식을 자사직원이 싸게 사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손정의는 일단 제삼자가 구매한 주식을 다시 사는 형식으로, 많은 실적을 올린 사원에게 실제로 배당금이 돌아가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스톡옵션으로 3억 엔에 상당하는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이 탄생할 만큼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6개 잡지 중 5개사가 적자였던 것이, 6개월 후에는 거꾸로 5개 잡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1개 잡지만이 적자를 봤다.
그러는 와중에도 감염치료는 계속돼, 의사로부터 일상생활 복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86년 2월, 다시 사장직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장직에 있던 오모리 씨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이피뉴스 기획팀
서선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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