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처음에는 정지영 감독의 귀환으로 주목받았다. 무려 13년만에 귀환하는 노장 아니던가.
설 연휴 극장가를 휩쓴 반전의 '부러진 화살'에 대한 관측은 사실 개봉 전만해도 반반이었다. 영화만 놓고 보면 잘 만들어진 영화에 재미까지 보장된 것은 틀림없었다. 온갖 기술이 난무하는 충무로에서 이처럼 담백하면서도 위트와 풍자가 적절히 뒤섞인 영화는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여기에 국민배우 안성기가 연기 잘하는 명배우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기도 했다. 언론이 나서서들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수식어를 갖다붙인 것도 모두 이 때문.
그러나 저예산에 소규모 배급사인터라 광고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작은 영화들이 퐁당퐁당(교차상영)에 울먹이던 일이 잦았던 시점인터라 이 영화가 확보할 극장관수도 보장이 안됐다.
뚜껑이 열린 지금, '부러진 화살'은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박스오피스 2위로 누적관객수 개봉 일주일도 안돼 60만을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라면 100만 관객 동원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개봉 전 정지영 감독에게 "영화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예의상 건넨 말은 당연히 아니었다. 정지영 감독은 그 말을 숱하게 들었는지 "다들 그래요. 정지영이가 만든 영화 중에 제일 재미있다고 하더라고. 두 사람의 캐릭터가 워낙 재미있어 아마 그 덕을 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 참, 젊은 친구들이 다들 재미있다고들 해서"라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만약 이 영화가 개봉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때문이라도 꼭 개봉을 해야해요. 과거의 부끄러움, 혹은 자기 가족,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부끄러움을 대부분은 덮고 싶어하죠.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건 곪아터지라는 이야기야. 극복은 들춰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건데 덮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걸 덮어버리고 말면 상처는 정신적인 것으로 옮아가고 말아요. 궁극에는 그 조직이 건강하게 발전되지 못하는 거지. 미국에서 월남전 참전 병사들 중 전쟁 후유증을 앓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 치료하는 방법이 다시 월남으로 데려가 싸웠던 현장을 보여주는 거에요. 공포를 잊으려고 하니 병이 생기는 거죠. 그걸 맞닥뜨리고 극복해야만 치료가 되는 거죠."
정지영 감독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모범답안과도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 생각이라면 이미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 혹시나 영화 개봉에 압력이 가해지기도 했을까?
"압력이 있다면, 나한테 직접 압력을 넣겠어요. 여러 방법을 쓰겠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일은 안 생길 것 같아요. 사법부가 조금이라도 더 성숙해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죠. 요즘의 사법부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는게 그건 모두 시행착오일 거에요. 이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 성숙해질 것이라고 봐요. 스스로의 잘못을 덮으려고 휘석시키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어떠한 변명을 내놓을 수 있겠죠."
영화는 정치와는 무관하지만, 이 영화는 해당 사건의 판사가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의 멤버이기도 한 정봉주 전 국회의원 관련 재판 2심 담당판사와 동일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지영 감독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길게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 영화는 사법부의 이야기이고 정치적인 문제들과는 관련이 없어요. 그러나 사법부도 하나의 권력이니, 말하자면 영화는 권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정치인들이라고 관심이 없지는 않겠죠. 다시 말하면 정치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거에요. 권력의 문제를 다루니까.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거에요. 헌법에도 명시됐듯이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요. 국민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사법붑나 국회, 정부가 위임받은 것인데 마치 자기들의 권리라고 착각해서 국민들 위에 군림하잖아. 심지어 국민들마저도 그들의 권력행사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죠. 이 영화에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라는 사람은 자기의 권리를 확실히 행사하고 있어요. 보통 우리는 재판에서 판사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서 함부러 대들지 않고 '예 아니요'라고만 대답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김 교수는 자기 권리를 확실히 행사하고 따질 것은 다지고 스스로가 변화할 권리를 행사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당시만해도 영화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이 영화의 운명"이라고만 말했다. "원래 영화를 만들 때, 내 영화를 되도록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요. 아무리 어려운, 또 철학적인 영화를 만들어도 많은 대중이 봤으면 해요. 그 말은 내가 내 필에 꽂혀, 내 세계를 파고 들고는 남들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자기 세계를 영화 속에 구현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나는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싶어요. 영화를 많이 봐준다는 것은 내 뜻한 바를 성취한 것이라고 봐요"라고 또 한 번 해답같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정지영 감독. 사진=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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