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일본에서 뛰던 시절 덕아웃에 앉아 있는 이승엽의 얼굴이 가끔 TV 화면에 잡힐 때 그늘이 가득해 보였다. 용병이기에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절박함, 그 압박 속에서 8년을 버텼다. 비록 마무리는 썩 좋지 않았지만, 이승엽은 분명 후회 없이 뛰었다. 이후 9년만에 돌아온 한국무대에서 본 그는 표정부터 달라졌다. 지난 주중 3연전 당시 열악한 광주구장 원정 라커룸에서 식사하는 그의 모습은 문 틈 사이로 지나다니는 일반인들이 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먼지 폴폴 나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어도 그저 즐거웠나 보다.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그의 얼굴에는 “그래,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 편해진 마음, 이승엽은 삼성의 중심이다
그래도 왜 부담이 없으랴. 개막 전부터 삼성이 우승후보 1순위로 꼽혔던 건 이승엽의 가세로 중심타선이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더구나 16일 현재 삼성은 예상 외로 3승 4패로 저조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돌아온 한국무대에서도 각팀 투수들은 집요하게 몸쪽 승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승엽은 한일통산 18년차 베테랑 타자다. 이미 집중견제에 이골이 난 그다. 전혀 흔들림이 없다. 마음이 편해진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타격감을 끌어올리는 게 눈에 보였다.
15일 대구 넥센전서는 6회 오재영에게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포를 터트렸다. 2003년 10월 2일 56호 홈런을 친 뒤 3118일만의 정규시즌 홈런이었다. 4타석 3타수 3안타 3타점 2득점으로 방망이가 달아올랐다. 삼성은 이승엽의 홈런으로 추격한 뒤 8회 이승엽의 추격의 적시타마저 터지며 결국 7-7동점을 만들었다. 비록 연장 접전 끝 패배했지만, 이승엽의 홈런 하나로 경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삼성의 지난 7경기를 살펴보면 결국, 이승엽의 방망이에 흐름이 달라졌다.
무리해서 장타를 만들려는 욕심도 안 보인다. 추격이 필요할 때는 바깥쪽 볼을 툭 밀어서 안타로 찬스를 연결해주고, 팀 공격의 활로가 보이지 않았던 13일 대구 넥센전서는 직접 도루를 시도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몸쪽 집중 견제에도 편안하게 커트로 대처하고 있다. 수비에서도 발군이다. 같은 날 몸을 날리지 않는 슬라이딩으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내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닌, “팀을 위해 뛴다”는 자세가 훤히 보인다.
▲ 이승엽 효과, 삼성타선 지배한다
확실히 이승엽의 복귀 후 삼성 중심 타선 무게감은 8개 구단 최고 수준이다. 이승엽 뒤에 들어서는 4번 최형우는 개막 후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으나 이승엽의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동시에 살아나는 모양새다. 14일 대구 넥센전서 시즌 첫 장타(2루타)를 뽑아낸 최형우는 15일 경기서는 6타수 2안타로 제 몫을 했다. 개막 후 3~4경기서 극단적인 풀스윙을 하다가 최형우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이 실린 스윙이 자취를 감췄지만, 이승엽이 무리하지 않고 안타를 생산하자 더불어 자신도 깨달은 듯 스윙 폭을 줄이고 갖다 맞춰서 그라운드 안에 집어넣는 타격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박석민은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맹타 행진이다. 타율 5할로 전체 1위다. 톱타자 배영섭도 드디어 깊은 잠에서 깨어 났다. 2번 타순도 블랙홀이었지만. 우동균이 나름대로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이승엽이 첫 홈런을 쳤을 때도 우동균이 볼넷을 고른 뒤 리드 폭을 크게 하며 배터리의 신경을 긁었기 때문에 오재영의 집중력이 떨어졌다. 이렇듯 상대 투수가 이승엽과의 승부에 부담을 느끼면, 2번 타자와의 승부에서 급해질 수 있어 빈틈을 노릴 수 있고, 4번 최형우는 더욱 타점 찬스가 늘어날 수 있다. 9년만에 돌아온 한국무대, 표정부터 달라진 이승엽이라는 거물이 삼성 타선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그의 얼굴, 그에게서 풍기는 아우라를 보노라면, 단연 삼성의 중심이다. 역시 스타는 스타다.
[타격감을 끌어올린 이승엽. 사진=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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