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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배우 이범수와의 만남은 기묘했다.
MBC 드라마 '닥터 진'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연기했던 이범수는 마치 살아있는 흥선대원군 같았다. 입고 있는 옷은 21세기의 것이었지만, 그의 말투, 눈빛, 그리고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흥선대원군이었다. 배우들이 흔히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서 못 빠져 나오는 것과는 달랐다. 이범수는 흥선대원군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선명하게 묘사하며 때로는 억울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배우 이범수가 흥선대원군을 연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제 앞에 흥선대원군이 있는 것 같네요" 이범수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난 뒤 건넨 말이었다.
'닥터 진'에서 그린 흥선대원군은 지금까지 익히 알고 있던 인물과 달랐다. 개혁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한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집한 보수적인 인물과 크게 달랐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에 대한 미화가 어쩌면 위험하게 비쳐질 수도 있었다. "미화되면 또 어떠냐?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일부러 미화시킨 것도 아니다. 이런 야망과 전략을 가진 지혜로운 사람이 아무 생각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밀린 이유는 절대 이하응 때문이 아니다" 이범수는 역사적 인물을 또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데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고, 흥선대원군 역시 근대화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힘들다. 그런데 힘들고 안타까운 건 잠을 못 자고, 쪽대본이라서가 아니다. 이건 안타까움의 본질이 아니다. 안타까움의 본질은 내가 연기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를 하게끔 해줘야 하는데, 대사를 외우기에 급급하다. 3~4일 못 잔 사람한테 원고지 50장을 주고 빨리 외워서 연기하라고 하면,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연기를 어떻게 하겠냐" 이범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외워만 주는 것도 고마운 거다. 연기를 잘하고 싶다. 연기를 잘할 수 있게 여건이 받쳐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이범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의 개선을 위해선 법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힘들었다는 말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리고 방송사와 제작사의 행태를 꼬집었다. "항상 핑곗거리를 댄다. 시청률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영화는 관객 반응을 안 보는데 왜 흥행하는 거냐? 자기 좋은 해석,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 거다. 이런 말을 하면 '다 찍어놓으면 방송국에서 안 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편성을 일찍 받아서 2분의1 정도는 제작을 하고, 나머지는 시청자 반응을 보면서 만들어도 되지 않냐"
"일주일에 하루 쉬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5시간만 잘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이범수는 결코 한류라고 내세울 게 아니라고도 했다. "세트장도 변두리에 무슨 물류창고였던 걸 껍데기만 덩그러니 있는 걸 스튜디오라고 한다. 합선, 화재의 위험성도 많다. 불 나면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류니, 세계화니 다 현실도 모르고 입만 산 사람들이 떠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는 잘난 척이다. 그게 어떻게 세계화냐? 더 부끄럽다. 그런 것부터 제대로 격식에 맞게 준비되어야 한다"
[배우 이범수. 사진 = HB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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