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불문율,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곤 한다.
지난 26일 대구 삼성-KIA전 8회초 2사 이후 정형식의 기습번트를 두고 일부에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KIA 선발 윤석민은 노히트노런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두고 “정형식이 불문율을 어긴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석민은 번트 타구를 직접 잡아 1루로 뛰던 정형식을 아웃시켰고, 9회 첫 타자 박한이에게 안타를 맞아 노히트노런이 깨지면서 결국 완봉승에 만족했다.
▲ 불문율, 문화의 차이가 있다
야구계에선 불문율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게 점수 차가 클 때 도루나 번트를 시도하지 말라, 투수를 자주 교체하지 마라, 홈런을 치고 세레모니를 요란하게 하지 마라 등이다. 이는 대부분 역사가 깊은 메이저리그에서 넘어온 것들이다.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통용되는 불문율들도 대부분 미국의 것이 정착된 케이스다. 한국의 정서와는 다소 맞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27일 부산 롯데전을 앞두고 “미국은 야구를 신사적인 스포츠로 여긴다. 어떤 상황이든 정정당당하게, 힘 대 힘으로 승부를 하는 걸 원칙으로 여긴다”라며 “대부분 한국 야구문화에도 맞는 불문율이지만, 때론 아닌 것도 있다”라고 했다. 이어 류 감독은 “투수가 대기록에 근접했을 때 기습번트를 시도하는 게 불문율이라는 건 몰랐다. 내가 야구를 할 땐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의 야구문화는 분명 다르고, 그에 따라 불문율도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다.
노히트노런, 퍼팩트게임은 투수가 세울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이런 기록이 임박했을 때 타자가 번트를 대는 걸 ‘비겁한 행위’로 규정한다. 불문율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류 감독은 “한국은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걸 부끄러워한다. 번트라도 대서 기록을 깨고 싶어한다”라고 했다. 그걸 제지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는 게 류 감독의 설명. 한국은 분명 ‘최선을 다해서 승리를 하는 것’이 야구가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다. 그에 따르면 정형식의 기습번트는 정당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류 감독은 일부 팬들이 그의 번트에 비난을 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윤석민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점수차도 당시 단 1점차였으니 말이다.
▲ 불문율의 변화, 한국도 점점 상대 배려 중시
시대에 따라서도 불문율이 달라지고 있다. 류 감독은 “우리나라도 이제 상대를 많이 배려하고 있다”라고 했다. 류 감독은 “예전엔 경기 막판에 점수 차가 벌어져도 내야수들이 베이스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경기 막판에 승부가 기울어지면 내야수들이 베이스를 비워주고 뒤로 물러선다”라고 했다.
여기서 확실해진 불문율이 ‘점수 차가 벌어졌을 때 도루를 시도하지 말라’다. 내야수가 주가가 나가 있음에도 베이스를 비워줬다는 건 사실상 승부가 결정이 났다는 걸 의미하니 말이다. 만약 여기서 크게 앞선 팀이 도루를 시도할 경우 ‘응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류 감독은 “그럴 때도 크게 지고 있는 팀이 도루를 하는 건 문제가 없다”라고 정리했다. 한편으로 예전엔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도 내야수들이 정상수비를 하던 통에 크게 앞선 팀이 도루를 할 때 늘 논란거리가 됐으나 이젠 내야수들의 위치를 보면 그 팀이 승부에 임하는 자세를 알 수 있으니 서로 불문율을 지키기가 수월해졌다.
또 하나. 류 감독은 “확실히 요즘은 서로 깨끗한 승부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요즘엔 개인기록을 무리하게 밀어주는 경우는 없다. 팬들도 보고 TV 중계도 다 된다”라고 했다. 1980년대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시즌 막판이면 개인기록을 밀어주기 위해 의도적인 선수기용 및 작전 변화가 심했다. 한 관계자는 “다음 타자의 타점기록을 의식해 3루 주자가 안타에 홈을 밟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웃었다. 또한, 시즌 막판 타격왕을 놓고 덕아웃에 계산기가 등장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코칭스텝이 계산기를 두드린 다음 의도적으로 타격왕에 도전하는 타자의 출전을 조절해준 것이다.
류 감독은 “기록은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무리하게 선수들의 기록을 밀어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의도적인 기록 밀어주기를 하면 상대팀이 기분이 나빠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럴 때 항상 빈볼 시비 등 서로의 감정이 악화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불문율. 해석하기에 따라 미묘한 입장 차가 존재하기도 하고, 암묵적이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그리고 시대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져왔다. 결국엔 서로 최선을 다하되,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기 위해서 나온 약속들이다.
[잠실구장, 정형식.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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