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부산 배선영 기자] 민병훈 감독은 단호했다. 그는 "앞으로 시장 영화 안 할 것이다. 하자고 해도 안한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영화 '터치'로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민병훈 감독을 5일 영화의 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화만 내지 않았다. 나아가야할 길을 찾았다. 불평만 하는 것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배급사가 극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런데 이제 방송채널까지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지 않아요. 제가 공부한 러시아에서도 이런 일은 절대 없죠. 양심을 벗어나는 해위에요. 저는 앞으로 시장영화를 안 할 겁니다. 하자고 해도 안해요. 투자를 한다는 이유로 시나리오를 검열하고 감독을 자르고 대놓고 거짓말 하고, 그들이 우리 영화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되묻고 싶은 마당에..."
그가 울분을 토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그의 영화 '터치'는 민병훈 감독은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이후 장편데뷔작 '벌이 날다'가 이탈리오 토리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영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이다.
그러나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내 대형 배급사로부터 외면 받고 있으니 아니, 애초에 배급사에 대한 기대치가 없었다 한들 극장에서까지 외면받는 천재 감독의 기분은 어떨까.
안그래도 영화계는 골몰하는 중이다. 오락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민병훈 감독은 생각 끝에 내놓은 '해답'을 제시했다.
"재미있는 영화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영화가 90이면 10 정도라도 의미있는 영화를 제작해야해요. 기부차원에서라도. 그런데 10은 커녕 죄다 오락영화죠. 마케팅비에만 20억 30억씩을 써대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극장에서 퐁당퐁당. 저는 이제 극장을 포기하겠습니다. 극장에서 영화 안 틀 거에요. 최근에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단독개봉을 하려고도 해봤어요. 다른 방법을 찾는거죠."
실제 민병훈 감독은 네이버를 통해 자신의 영화 '터치'를 개봉하려 했으나, 네이버 측에서 오히려 만류했다고 한다. 영화 불법 복제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만큼 감독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세일까지 포기해야할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던 민병훈 감독은 "대체 영진위는 뭐하는 지 모르겠어요. 저작권을 위한 법적 장치도 너무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민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배급문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영화감독들이 투자배급사의 노예가 돼서는 안돼요. 생각을 달리해서 아쉽지만 모바일이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제 영화를 틀 거에요." 저작권,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는대로 그는 자신의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만의 창구를 고민해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영화는 예술영화관에서 보면 된다고요? 그게 더 나빠요. 한 쪽으로 모는 거잖아요. 저만해도 씨네큐브, 아트시네마 가기 힘들어요. 하루 날잡고 가야돼요. 관객들은 무슨 죄인가요? 제가 부탁하는 것은 이제 이것 뿐이에요. 국가차원에서 영진위 차원에서 영화평론가들 모아놓고 그 해의 좋은 영화를 10편 꼽아 DVD로 만들어 전국 초중고 도서관, 대사관, 해외에다 뿌리는 것. 관객들도 이런 영화를 보는 게 훈련이 돼야하는 거고, 이미 러시아에서는 일찍부터 해왔던 일이에요. 대종상, 청룡영화상 같은 영화시상식보다 이런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런거 다 하는데 예산 5억도 안 들겁니다. 다시 말 하지만 내 영화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우리 영화 환경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올해 우리 영화계는 한 편의 천만영화 탄생과 더불어 많은 한국영화들이 사랑받았다.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이 있었던 만큼 암도 존재했다. 잘 된 영화들이 주목받는 가운데, 그렇지 않은 영화들은 채 꽃을 필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으스러져 갔다. 그리고 최근들어 대형배급사 투자 영화와 소규모 영화들의 양극화에 대한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은 그래도 희망의 증거다. '터치'로 절망 끝에 희망을 말하는 민병훈 감독의 이야기는 분명 주목할 만 했다.
[민병훈 감독. 사진=민병훈 필름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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