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에 대한 타란티노식 통쾌한 복수극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바위가 곳곳에 돌출된 삭막한 광야에 태양이 작열하고 더위에 지친 흑인 노예들이 발에 쇠고랑을 차고 힘겹게 끌려가고 있다. 그들을 감시하는 말을 탄 두 노예상인.
이윽고 밤이 되고 야영을 준비하려는 그들 앞에 마차가 다가온다. 그는 치과의사인 독일인 킹 슐츠(크리스토프 왈츠)이다. 그는 카루칸 농원에서 끌려 온 장고라는 노예를 찾는다. 킹 슐츠는 흑인노예 장고(제이미 폭스)에게 카루칸 농원에서 감독 일을 했던 브리틀 삼형제의 얼굴을 아냐고 묻고 장고는 그들을 잘 안다고 대답한다.
노예상인에게 장고를 사려던 킹 슐츠는 거부하는 그들에게 총을 발사한다. 두 노예상인은 현상수배범이었고 킹 슐츠는 현상수배범을 체포하거나 사살해서 돈을 버는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흑인 노예들을 풀어주고 장고에게 자유를 준 킹 슐츠는 장고에게 브리틀 삼형제를 사살하면 한 명당 25달러씩, 75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다른 곳으로 팔려 간 아내 브룸힐다를 찾으려는 장고는 아내를 구해주겠다는 킹 슐츠와 미국 평원을 달리며 범죄자인 백인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1858년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인 텍사스 어딘가에'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는 60년대에 큰 인기를 모았던 이탈리아 마카로니(혹은 스파게티)웨스턴인 세르지오 코르부치 감독의 '장고'를 원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이지만 제목과 주제곡만을 차용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변종영화다.
세르지오 코르부치 감독은 주인공인 장고가 웨스턴 무비에서 필수인 말도 타지 않고 관을 끌고 삭막한 황야를 걸어가는 오프닝 장면과 아르헨티나 태생의 엔리케스 바카로프 작곡의 그 유명한 주제곡으로 장고 역의 프랑코 네로를 부각시켰다.
이탈리아 마카로니 웨스턴의 명감독이며 선두주자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4년도 작품인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쌍벽을 이룬 프랑코 네로는 '장고'로 각인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 후반에 개봉되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황야의 무법자'의 여세를 몰아 곧 바로 수입된 '장고'는 '속 황야의 무법자'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고, '장고'보다 뒤늦게 개봉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1965년도 작품인 '속 황야의 무법자'는 어쩔 수 없이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으로 개봉 되어 이름이 없었던 '황야의 무법자'의 이름이 '장고'였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고 '장고'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주인공 이름으로 으뜸이 됐다.
1966년도의 '장고'는 백인이며 자유인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장고는 흑인이며 더욱이 노예다. 그런 만큼 1966년도의 주제곡을 그대로 차용한 오프닝신은 흑인 장고가 다른 흑인노예들과 끌려가는 장면으로 부각시켜 1966년도 '장고'와는 전혀 다른 설정의 영화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팽개치고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는 독일인 킹 슐츠와 장고가 말을 타고 텍사스 도트리에 당당하게 입성하는 장면은 마리오 반 피블스가 흑인 건맨의 늠름한 기상을 보여줬던 1993년도 작품인 '파시'와 빙 레임즈가 흑인 영웅으로 부각되었던 존 싱글턴 감독의 1997년도 작품인 '로즈우드'를 연상하게 한다.
또 흑인이 말을 탄 것을 처음 본 마을 사람들의 반응과 흑인이 말을 타는 것이 금지된 테네시 농장의 인종차별은 물론 미시시피의 악랄한 대부호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즐기는 흑인 노예들 간의 처절한 만딩고 싸움과 개 먹이가 되는 노예의 참상을 통해 타란티노 감독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로 인한 야만적인 미국의 역사적인 오점을 각인시킨다.
그러면서 주제의 심각성에 함몰되지 않고 결코 무겁지 않게 백인들에 대한 잔인한 복수의 과정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극적 긴장감으로 몰아가면서 통쾌한 극적 재미를 주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1966년도 '장고'의 압권은 관속에 감춰두었던 기관총을 꺼내 악당들에게 난사하는 장면으로 무엇보다 악당들에게 양손이 짓뭉개져 망가진 장고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아내를 죽게 한 잭슨 소령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라스트신은 잔혹하면서도 후련하다.
그런 만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장고와 잭슨 소령이라는 일대 일의 대결구도를 벗어나 미국 백인들을 상대로 총탄 세례를 퍼붓는 집단 살해 장면으로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는 유혈이 낭자한 복수극의 오락적인 재미를 부각시킨다.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지옥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타란티노의 연출의도는 킹 슐츠가 장고에게 이야기 해 주는 독일 전설을 통해 각인되는데 장고의 아내 이름인 브룸힐다는 독일 전설에 나오는 신중의 신인 우탄의 딸 브룸힐다 공주를 지칭하며 용을 죽이고 지옥불을 뚫고 공주를 구하는 지그프리드는 장고와 겹쳐진다.
그런 만큼 캘빈 캔디의 손아귀에서 아내 브룸힐다를 구하는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고 희생과 위험이 따르지만 흑인 영웅 장고는 뛰어난 사격 솜씨로 악당들을 제거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장점은 아카데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탄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각본과 타란티노 특유의 연출방식, 그리고 명연기자들의 묵직한 열연과 귀에 익은 다양한 장르의 OST 에 있다.
정의의 바운터 헌터이자 남부 인간 말종 백인 쓰레기들을 총으로 청소하는 전직 치과의사 킹 슐츠는 장고를 돕는 유일한 백인으로 가장 인간적인 독일인이다. 반면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 백인들은 남녀 모두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타란티노의 2009년도 작품인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에서 잔인한 독일군 한스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왈츠는 전혀 상반된 이미지로 주연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백인 농장주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잔인한 악역으로 극적 재미를 부각시켜준다.
특히 흑인이면서 흑인노예들을 벌레 취급하고 백인의 편을 들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디카프리오의 심복인 흑인 집사 사무엘 잭슨의 교활하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예전 장고였던 프랑코 네로가 디카프리오와 같이 만딩고 싸움을 지켜봤던 노신사로 우정출연하여 장고인 제이미 폭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데 오마주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또한 '장고' 주제곡과 마지막 총격 장면에서 인종차별을 노래한 힙합의 전설인 투팍의 '언터쳐블'은 이 영화에 삽입된 뛰어난 곡들과 함께 러닝타임 2시간 45분의 지루함을 단숨에 잊게 해 준다.
쿠엔틴 타란티노식 유머와 뛰어난 영상, 그리고 음악의 오마주로 복수와 응징의 통쾌함을 주는 이 영화는 두근두근 시네마로 놓치기 아까운 변종 웨스턴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 스틸컷. 사진 = 소니 픽쳐스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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