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감독은 사계절 내내 벌벌 떤다.”
한화 김응용 감독이 한참 더운 어느 여름 날 기자들에게 웃으며 한 말이다. 김 감독은 당시 긴 언더웨어를 착용했었는데, 알고 보니 “감독은 언제나 잘릴 수 있다”와 일맥상통한 답변이었다. 그만큼 감독이란 항상 긴장되는 위치이니 더운 줄도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감독생활 40년이 넘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감독도 그런 말을 할 정도이니, 연차가 짧은 국내 대부분 감독은 지금도 피 말리는 심정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올 스토브리그서 감독들에게 모처럼 훈훈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감독 교체 없는 스토브리그가 진행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프로야구 31시즌동안 매년 최소 1명 이상의 감독이 교체됐다. 그러나 올 시즌엔 최근 몇 년간 팽배했던 감독 교체 피바람마저 불지 않을 전망이다. 통상 프로야구에서 감독교체는 마무리훈련이 시작하기 전에 이뤄졌는데 이번엔 아무런 일도 없었다.
▲ 구단들, 감독들에게 재신임을 하다
포스트시즌 탈락 팀들의 비시즌 첫째 화두는 언제나 감독 유임 혹은 교체 여부다. 올해 역시 4강 탈락 팀들을 중심으로 감독 교체설이 돌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NC 김경문 감독의 경우 신생팀 치고 시즌을 거듭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교체설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최하위 한화의 경우 팀 전력 자체가 너무 약해 김응용 감독의 용병술이 1년에 걸쳐 팀에 100% 스며들기란 어렵다고 봤다.
SK 이만수 감독과 KIA 선동열 감독도 재신임을 받았다. 계약기간을 채우길 원했고 그 기간엔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구단의 의지다. 최근 몇년간 감독 교체 칼바람으로 감독들의 계약기간이 사실상 의미를 잃었지만, 구단들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계약기간 내에 감독을 잘라봤자 긍정적 효과보다 역효과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본다. 아무래도 감독이 계약기간 내에 갑자기 교체되면 혼란의 시기를 피할 수 없다.
▲ 1년 뒤 칼바람? 감독들의 서늘한 뒷목
그렇다고 해서 9개구단 감독 중 마음이 편안한 감독은 단 1명도 없을 것이다. 마침 내년 시즌을 마치고 계약이 종료되는 감독이 많다. 두산 김진욱 감독, LG 김기태 감독, KIA 선동열 감독, SK 이만수 감독, 한화 김응용 감독, NC 김경문 감독이 그 주인공들. 3년 계약 중 내년에 두번째 시즌을 맞이할 넥센 염경엽 감독, 롯데 김시진 감독. 역대 감독 최고대우 재계약이 확실한 삼성 류중일 감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담감에 시달릴 전망이다.
구단 입장에선 어차피 내년 시즌에 감독이 계약만료가 되는데, 굳이 1년 앞두고 칼부림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감독들은 불안하다. 계약 마지막인 내년엔 오히려 구단들이 더 냉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구단들은 계약 마지막 해를 보내는 감독에게 의외로 시즌 끝나기 전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한 케이스가 있었다. 감독 교체를 결정했다면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린 뒤 재빨리 후임 감독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내년에 계약이 끝나는 감독 6명 중 시즌 도중에 옷을 벗을 감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수석코치 교체, 감독들에게 보낸 무언의 메시지
감독 교체는 없었지만, 포스트시즌 탈락 팀들 중 대부분 팀이 수석코치를 교체했다. SK는 이광근 수석코치 대신 성준 투수코치를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이광근 수석코치는 KT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KIA 이순철 수석코치도 옷을 벗었다. 대신 2군 한대화 감독을 수석코치에 앉혔다. KIA는 내년 삼성에서 익숙한 조합이었던 선동열-한대화 체제로 승부수를 던진다. 롯데도 권영호 수석코치를 2군에 보낸 뒤 계약을 해지하고 권두조 2군 감독을 수석코치로 복귀시켰다. NC도 박승호 수석코치를 재활군으로 보내고 양승관 수석코치를 임명했다.
야구같이 대규모 스포츠에선 코칭스태프 숫자도 많다. 수석코치는 코치들을 총괄하고 실질적으로 감독의 의중대로 현장 살림살이를 하는 보직이다. 당연히 감독, 일반 코치들, 심지어 프런트들과의 의사소통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감독의 수족이자, 감독 이상으로 중요한 현장보직이 수석코치다. 감독이 화려하게 빛나는 한편, 수석코치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보직이다.
4강 탈락팀들 중에선 한화를 제외하곤 모두 수석코치를 바꿨다. 팀 분위기 일신 성격이 가장 강하지만, 야구인들은 “사실상 감독을 압박한 모양새”라고 해석한다. 수석코치가 바뀌면 감독이 구현하려는 야구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감독들 입장에선 구단으로부터 무언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9개구단 감독(위), 잠실구장(가운데, 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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