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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파란만장하다란 말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임지연(48)의 인생을 직접 만나 들었다. 169cm에 48kg로 여전히 미스코리아 시절 못지 않은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0년 가까이 되는 지난 세월을 임지연은 "오르락내리락 시소 같았다"고 했을 만큼 지나온 길은 우여곡절이 컸다.
학창시절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딸 정도로 유망했던 수영선수였던 그는 1984년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 미스코리아 태평양을 받았고 이듬해 미스 아시아태평양 대회에 나가 한국인 최초로 국제 미인대회에서 수상하며 승승장구했다. 국제대회 당시에는 한 부호가 자신이 보유한 섬과 비행기를 보여주며 "널 여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프러포즈했지만 임지연이 "싫다"고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스물한 살 임지연은 어린 나이에도 당찬 여자였다. 당시 방송가에선 이례적으로 신인이 음악프로그램 단독 여성 MC를 맡았는데, 방송국을 옮긴 탓에 오히려 급여가 적어졌음에도 이를 알리 없는 주변에선 시기와 질투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다짜고짜 방송국 국장을 찾아가 "이거 못하겠어요. 생활이 안 되는데 어떻게 방송을 해요. 차라리 다른 방송국 가겠어요"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갓 데뷔한 신인의 당돌함에 국장은 놀라고 한편 기특했는지 적게나마 급여를 올려줬다. "철 없었죠. 지금 같았으면 어떻게 그랬겠어요. 그때 절 선택해준 그분들이 큰 결심해준 거고 진심으로 감사해요."
시련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톱스타와 유명 의사가 얽힌 희대의 삼각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연예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임지연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당시의 스캔들이다. 스캔들 이후 일본인 재벌과 결혼해 화려한 생활을 누렸으나 오래가지 않아 이혼했고, 영화 제작으로 다른 삶을 꿈꿨으나 거액의 사기를 당하며 말 그대로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임지연이었다.
"정말 방황을 많이 했어요"라며 "술만 마시고 그랬다면 정말 폐인이 됐을 것"이란 말처럼 임지연은 당시 사랑, 결혼, 돈 모든 것을 잃고 좌절했다.
그럼에도 걷고 걸었다. 임지연은 10시간 가까이 자전거도 타며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혼자의 힘으로 잠에 들었고 건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우울증을 쉽게 얘기하지만 결코 쉬운 게 아니에요. 웬만한 노력 아니면 빠져 나오질 못해요. 수면제나 술 모두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해요."
"살만한 가치 있어요. 제가 인생에서 실패를 했을 때 만약 나쁜 생각을 하고 인생을 그만뒀다면 아마 전 영원히 수식어 하나가 붙는 거예요. '걔, 결국 그렇게 살다가 갔구나. 실패자네'라고.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그 수식어를 남기는 거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명한 사람만 기록에 남는 게 아니에요. 일반인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렇게 각인이 되는 거예요. 전 그게 싫었어요. 그러니 절 보고 중년의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길 바라요."
세월 지난 스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방송을 다시 시작할 때 그것 때문에 무서웠고 망설여졌어요"란 마음이었다는 임지연은 "한편으론 임지연이란 여자가 그 일이 아니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일이 없구나, 기억되는 게 그런 것뿐이구나 싶어 '내 인생 왜 이러지'란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어차피 그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잘 살고 있고 저도 잘 살고 있잖아요. 자꾸 언급하면 또 상처가 될 수도 있고요. 제가 더 많이, 열심히 일을 해서 그 이야기는 그만 끝내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 지난 과거의 수식어는 잘라버리고 제 앞의 수식어가 '배우 임지연'이 되면 좋겠어요. 진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 속 썩이지 않는 효녀가 되고 싶은 게 바람이에요. 돌이켜 보면 미스코리아가 되고 시험에 합격하거나 했을 때, 우리 엄마가 '내 딸이야' 하고 대견하게 생각했을 때,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배우 임지연. 사진 = 네끼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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