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종착역이 보인다.
지난 12일(한국시각). 윤석민의 트위터에 윤석민이 볼티모어의 모자를 쓴 사진이 올라왔다. 윤석민은 도대체 왜 이 사진을 올린 것일까.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정황상 윤석민과 볼티모어의 계약이 임박했다고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윤석민이 볼티모어 모자를 쓴 사진을 자신있게 올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이미 수 많은 팔로워들에 의해 리트윗됐고, 미국 언론들도 접했다.
미국 언론은 아직 윤석민의 볼티모어행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메디컬테스트를 아직 하지 않았다”라는 보도다. 통상적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이 선수 영입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땐,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 메디컬테스트 결과까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발표하는 게 관례다. 가능성은 낮지만, 메디컬테스트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견되면 계약이 틀어지는 케이스도 간혹 있다. 과거 정대현도 이 과정에서 볼티모어행이 무산됐다.
▲ 국내출신 ML 2호보다 값진 FA출신 1호 빅리거
윤석민이 메이저리그에 안착하면 류현진에 이어 국내프로야구 출신 2호 메이저리거가 된다. 그리고 윤석민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FA 자격을 얻은 선수 중 1호 메이저리거가 된다. 2012년 류현진은 FA 자격이 아닌 포스팅시스템에 의해 메이저리그를 밟았다. 포스팅시스템은 국내에서 풀타임 7년차 이상 선수에게 원 소속구단의 동의 하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윤석민 역시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몇 차례 메이저리그행을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포기했다. FA 자격을 채운 지난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고, 이제 그 종착역이 보인다. 윤석민이 해외진출 데뷔시점을 늦춘 건 이유가 있다. 자신의 입지와 자신을 바라보는 미국 야구의 믿음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서 해외 진출을 시도할 정도로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특급선수가 아닌 한, 구단의 동의를 얻어 조기에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건 쉽지 않다. 국내구단 역시 초특급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면 최대한 오래 보유하고 싶어한다.
이는 앞으로도 류현진급의 선수가 아닌 이상,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포스팅시스템은 이적료가 부과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 입장에서도 초특급선수가 아닌 이상 영입을 추진하는 게 쉽지 않다. 믿음이 떨어지는 선수에겐 많은 이적료를 책정할 수 없다. 따라서 윤석민으로선 만족스럽지 못한 이적료를 책정받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보다는, FA 자격을 채웠다. 메이저리그 구단도 완전한 FA에겐 몸값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특급선수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영입을 고려할 수 있다.
앞으로 국내선수 중 FA 자격을 얻는 선수는 자연스럽게 윤석민 케이스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윤석민이 류현진과는 또 다른 의미로 선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좀 더 많은 선수가 해외로 나가고, 국내로 들어와야 한국야구가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걸 감안하면,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안착은 류현진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초특급 1인자는 아니다, 그래도 ML 갈 수 있다
윤석민은 국내에선 류현진과 함께 최고 투수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꾸준함과 파괴력에서 윤석민은 류현진에겐 한 수 아래였다. 메이저리그서 바라보는 시선도 같다.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은 수 년 전부터 류현진, 윤석민, 오승환 등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 수 차례 거론된 거의 매 시즌 불펜 등판 경력, 어깨부상으로 인한 선발로테이션 결장 등은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투수’ 윤석민의 가치가 떨어지는 원인이 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많은 선수가 모이는 메이저리그서 선수 수급은 항상 필요하다. 신인들과 마이너리거만으로는 부족하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과거 국제무대서 인상깊은 모습을 남겼거나, 해외리그서 좋은 실적을 남긴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동안 적지 않은 국제대회에 나섰던 윤석민은 이런 점을 파고들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윤석민의 행선지로 거론된 팀들은 윤석민을 선발 후미 활용, 혹은 불펜 활용 가능성을 놓고 윤석민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줄다리기를 했다. 이제 그 최종 승자가 볼티모어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윤석민이 류현진만큼 압도적인 선수가 아닌 상황에선 이런 저런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국내 유턴설도 있었고, 미국 현지 쇼케이스를 일종의 입단 테스트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국내 유턴설은 윤석민과 보라스의 끈기에 자연스럽게 일축됐고, 현지 쇼케이스도 보라스측이 먼저 구단들에 연락해서 윤석민을 메이저리그 캠프로 보내지 않은 한 엄밀한 의미의 입단테스트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윤석민에 대한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불펜 경력, 어깨 부상 경력 등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게 정상이다. 나쁘게 볼 필요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앞뒀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윤석민은 메이저리그의 시선에 1인자 이미지엔 살짝 부족한 해외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한국야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류현진만한 괴물이 아닌 선수들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메이저리그에 꼭 1인자가 아니더라도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윤석민이 심어줬다.
▲ 계약 세부사항은 여전히 안개 속
사실 계약 세부사항이 중요하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선수의 계약은 매우 세밀하고, 또 복잡하다. 윤석민과 보라스는 줄기차게 메이저리그 계약 보장, 선발로테이션 합류를 바랐다. 그게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현지 분위기상 메이저리그 계약 자체는 보장 된 듯하다. 그러나 선발로테이션 진입 보장은 쉽지 않은 분위기다. 류현진도 확실하게 몇 선발이라는 게 보장되고 LA 다저스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3선발에 안착했다.
윤석민의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계약금과 계약기간, 연봉, 각종 옵션도 결정될 전망이다. 그 세부사항이 무엇이든 윤석민은 그에 합당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볼티모어로 간다면 볼티모어에서 거는 기대, 그리고 국내에서 윤석민에게 거는 기대는 분명히 크다. 윤석민 역시 류현진처럼 일거수일투족이 미국 현지와 국내를 통해 보도될 것이다. 계약규모만큼의 칭찬, 그리고 비난도 각오해야 한다. 국내는 아니더라도 미국에선 계약 규모 자체가 곧 그 선수에 대한 기대치다.
윤석민이 곧 메이저리그로 간다. 그 조건이 무엇이든 윤석민은 치열한 전쟁을 앞뒀다. 혹시 선발이 아니더라도, 불펜에서 뛰더라도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윤석민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제2의 윤석민, 제3의 윤석민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류현진처럼 좋은 조건에 거액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가는 선수도 있다면, 윤석민처럼 우여곡절 끝에 메이저리그로 가는 선수도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입성 임박은 곧 한국야구의 또 다른 역사 개척을 의미한다.
[윤석민. 사진 = 윤석민 트위터 캡처,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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