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언젠가부터 이 표현은 사라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 2014년 소치올림픽에선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한 한국에선 알게 모르게 금메달 집착증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언론과 대중 모두 이런 의식을 버렸다.
쿠베르텡이 고대올림픽을 창시할 당시 올림픽은 평화의 상징이었다. 올림픽 헌장을 봐도 올림픽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닌 개인이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경기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소치올림픽 홈페이지에는 메달 총 개수와 금메달 개수를 중심으로 한 메달 집계가 나와있다. 그러나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메달 집계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 부진한 대회 초반, 비난보다는 격려
소치올림픽이 지난 15일(한국시각)로 반환점을 돌았다. 한국은 금, 은, 동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해 금메달 중심으로 한 순위와 총 메달 개수를 중심으로 한 순위 모두 16위다. 애당초 대한체육회는 4~5개에서 6~7개의 금메달에 종합 10위권을 노릴 것이라는 목표를 밝혔는데,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사실 대회 초반 메달 사냥이 지지부진했다. 일부 메달을 기대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팬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최근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인터넷과 SNS가 활성화된 세상. 올림픽 소식을 TV 중계로만 접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대중의 반응과 의견이 모인다.
스피드스케이팅서 메달이 유력했던 모태범과 이승훈이 초반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는 일부 악플러들을 꾸짖었다. 언론도 메달 유력선수가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고 해서 비판을 하기보단 격려로 감쌌다. 당연하다. 올림픽은 참가 그 자체가 영광인 무대다. 올림픽에 단 1번 참가조차 하지 못하는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보다 훨씬 더 많다. 굳이 따지자면 이들이 억울한 케이스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는 그 자체로 승자다. 올림픽에서 투명하게,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면 비난을 받을 선수는 단 1명도 없다.
▲ 미안하다 말하지마, 올림픽은 축제다
심석희가 15일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전서 레이스 막판 저우양(중국)에게 선두를 내줬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 금메달이 좀 아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심석희는 세계 2위다. 정말 자랑스러운 성과를 거뒀다. 팬들과 언론들은 그녀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정작 축하를 받아야 할 심석희는 결승전 직후 코칭스태프 앞에서 살짝 울먹였다.
심석희가 잘못한 게 하나 있다. 결승전 직후 “금메달에 미치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라는 코멘트를 한 것이었다. 물론 “값진 은메달을 따서 만족한다”라고도 했지만 말이다. 세계 2위가 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정작 심석희가 지난 4년간 흘렸던 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말이다.
신세대 선수들은 확실히 다르다. 은메달, 동메달을 딴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행동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혹시라도 “미안, 죄송”이란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올림픽이라는 축제에 참가한 선수가 할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해 억울한 마음에 우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올림픽에서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결과가 어떻든 의식할 필요가 없다.
팬들, 언론들도 이젠 많이 성숙해졌다. 1등주의, 금메달 집착증에 매몰돼 올림픽의 참 의미를 간과하는 케이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은 마음껏 뛰고 돌아오면 된다.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한다.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1등만 금메달이 아니다. 올림픽을 향한 도전이 금메달이다.
[은메달을 딴 심석희(위), 심석희 시상식(가운데), 동메달을 딴 박승희(아래). 사진 = 소치(러시아)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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